시민평론단 - 비전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소개란에 '정성일' 평론가는 <겨울날들>에 대해 "최승우의 두번째 영화는 제목이 내용이다"라 했다. 영화 전체를 하나로 압축해라면 이 보다 더 명확하게 표현하긴 어려울 것같다.
어느 겨울, 우리는 어떤 사람들의 일상을 따라 간다. 남산 타워가 보이는 골목길 긴 계단을 비추고, 또 다른 골목과 계단, 그 아무도 없는 고정된 공간이 먼저 나오고 정지된 이 화면에 사람이 올라오고 지나서 올라간다. 발걸음이 무겁게 보이고 무한정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이 사람이 화면에서 사라져도 화면은 한참 멈추어있다. 그냥 퇴근하는 사람 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발자국 소리는 공명되어 아주 크게 울려 공허하기 이를데 없고 밤 그림자는 온기를 삼켜버린 듯 하다.
새벽이 되면 같은 골목길 긴 계단을 그 사람이 다시 내려온다. 계단 먼저 비추다 사람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계단은 좀 더 있다가 화면에서 사라진다.
집안은 언제 떠나도 될 것 같은 이제 막 자리를 깐 듯 보이는 장식 없는 공간이며 자고 일어나고 간단 일 처리할 뿐이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들, 복잡한 버스나 전철 안에서 조는 듯, 묵상하듯 누가 있는지 아무 관계없이 그냥 고개 숙여 있는 군싱들의 피곤함만 드러난다.
직장에서도 길에서도 그저 묵묵히 서있거나 일하거나 걷거나 할 뿐이다.
퇴근길 국밥에 소주 한잔하는 시간에도 그저 혼자이며 무표정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이고 가끔 일하는 현장을 보여주지만 그냥 누군가일 뿐이다.
<겨울날들>에서는 대사가 없다. 긴호흡으로 한장면을 길게 깊게 바라볼 뿐.
일상에서 날 수 있는 소리나 가끔 멀리서 들리는 마이크 소리가 있고 누구하곤가 단 한번 통화할 뻔했지만 부재중이라는 소리만 들릴 뿐.
그래도 움직이면 나는 소리와 주변 소리들이 영화를 제법 장악한다. 발자국 소리,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소리, 심지어 도시 소리까지 포함하여, 강조되는 소리들이 대사 대신 울린다. 주변 소리가 사운드로 확장되고 사운드를 통해 장면이 더욱 또렷이 들어온다.
그러기에 어떤 유추나 생각없이 오롯이 화면에만 집중하게 한다. 영화가 어디까지 끌고 들어갈 지 궁금증이 살짝 우러난다.
감독은 지방에서 올라온 듯 보이는 몇사람 일상을 이렇게 잡아내고 그들이 머물고 지나는 땅을 비춘다.
골목이나 계단, 거리는 마음을 비추듯 애리하고, 서울시가지 야경 등 잡아내는 장면은 어둡지만 수려하다. 서울 야경은 흔히 말하듯 사진같은 장면이다. 그런데 이 겨울을 뭔가 혹독하게 보낼 양 아름다움도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긴 장면들은, 서울이라는 도시는 이들을 품는 것도 아니고 뱉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있을 뿐임을 나타내는 것일까?
우리 하루 생활이 사실 전날과 다른게 뭐가 있겠어?
소소한 일상으로 보면 반찬이 약간 달라지거나, 집밥대신 외식 등 변화가 있기도 하지만 지나서 보면 거의 다 똑같다. 우린 놓여진 공간에서 그저 살아갈 뿐이고 할 일을 할 뿐이다.
한면으로는 이 영화는 장면들을 통해 명상하게 하고, 정말 힘들게 살고 있구나 싶은 사람의 묵묵한 일상을 보면서 영화제에 참석하고 영화를 보는 내 일상에선 그 무엇도 투덜거릴게 없다는 깨달음을 주는 것 같아 무척반갑다.
그래 인생 별것있나! 그냥 살아가는 거지. 사는 것 자체가 도 아닌가! 이리 말하는 것 같다.
다양한 표현을 억제하고 오직 한가지 흐름만을 잡아 화면에 담는 감독의 날카로운 끈기가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