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단잠> : 고립과 부유, 프레임 속의 애도

By 김희선

이광국의 <단잠>은 남편을 잃은 인선(이지현)과 아빠를 잃은 수연(홍승희), 모녀가 맞닥뜨린 세 번째 기일 즈음을 따라간다. 영화는 죽음의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라는 질문을 지우고, 관객을 곧장 감정의 밀도 속에 던져 넣는다. 낯설고 때로는 편치 않은 이 체험이 곧 영화의 언어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설명 불가능한 상태 그대로 견디는 것. <단잠>은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한다.

 

첫 장면에서 인선은 단정한 차림으로 골목을 걸어 나온다. 걸음은 차분하지만, 카메라는 고정된 위치에서 초점을 불안하게 흔들며 그녀를 포착한다. 인물은 선명히 잡히지 않고, 화면은 흐릿하게 어긋난다. 흔들림은 인선의 내면을 번역하는 듯하다. 관객은 인선의 표정을 읽기도 전에 그녀의 불안을 몸으로 감각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계단 장면에서 카메라는 단단히 고정된다. 인선의 뒷모습이 멀어지며 프레임 속에 각인된다. 불안정한 주관과 냉정한 객관, 다가옴과 멀어짐. 이 대비는 <단잠>의 태도를 미리 예고한다. 영화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흔들림과 고정, 거리와 시선의 차이로만 드러낼 것이다.

 

이 전략은 인선과 수연의 분노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인선이 언니와 마주 앉을 때, 언니는 평행한 구도로 포착된다. 그의 말은 사회적 규범과 현실의 논리를 대변하며, 카메라도 이를 담담히 기록한다. 반면 인선은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구도 속에 놓인다. 사회적 언어에 눌려 위축된 존재처럼 비친다. 그러나 분노가 터져 나오는 순간, 카메라는 아래로 내려가 그녀를 올려다본다. 억눌린 감정이 질서를 뚫고 치솟는 힘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수연 역시 마찬가지다. 분노의 순간마다 카메라는 낮게 깔려 그녀의 치받는 에너지를 관객이 직접 체감하게 한다. <단잠>의 카메라는 감정을 대사로 번역하지 않는다. 앵글의 전환이 곧 이들의 언어다.

 

수연과 인선은 같은 상실을 품었지만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두 사람은 같은 우주를 떠도는 서로 다른 궤도의 행성 같다. 인선에게 슬픔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눌리고 비틀리고, 수연에게는 언어로 담기지 못한 채 분노로 솟구친다. 같은 슬픔을 품었지만, 각자의 자책이 간극을 더 깊게 만든다. 서로를 위로하기보다 죄책과 후회에 붙들려 고립된다. 영화는 이 고립을 서둘러 봉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소되지 않는 그 간극을 고집스럽게 응시한다.

 

특히 수연은 분노와 고립 사이에서 쉼 없이 흔들린다. 늘 어딘가로 향하고 누군가를 찾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내어놓지 못한다. 자신조차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채 떠도는 모습이다. 영화는 무엇이나 를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말해지지 않는 것, 화면 밖의 침묵과 거리감으로 관객이 고통을 감각하게 한다. 바로 그것이 <단잠>의 태도이자 존재 이유처럼 보인다.

 

가만히 보면 <단잠>의 인물들은 저마다 누군가의 문을 두드린다. 표면적으로는 상대를 돕겠다는 몸짓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사실 자신이 도움을 요청하는 절박함이 숨어 있다. 그러나 위로는 쉽게 닿지 않는다. ‘도우려는 몸짓은 결국 자기 고통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되돌아온다. 영화는 이 끝없는 두드림을 통해 애도의 고립을 정밀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모녀가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한 프레임 안에서 같은 곳을 응시하는 순간, 관객 또한 비로소 숨을 고르게 된다.

 

결국 <단잠>이 남기는 것은 손쉬운 치유나 화해의 약속이 아니다. 영화가 끝내 보여주는 것은 해소되지 않는 고립, 설명 불가능한 간극이다. 그러나 관객은 그 자리에 함께 앉아 보는 체험을 통해 깨닫는다. 애도의 과정이란 결국 이해하거나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곁에 머무르며 고통을 함께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저 함께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하나를 밀어붙인다. 그리고 한순간, 그 태도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슬픔이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고 나서야, 비로소 타인의 분노가 슬픔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스며든다. 카메라가 고립을 응시한 자리에서 다른 얼굴을 받아들이려는 태도, 애도의 불가능성 속에서도 잠시나마 서로를 돌아보려는 마음이 열린다. <단잠>은 바로 그 불편한 동행을 우리에게 건넨다.

​ 

BNK부산은행
제네시스
한국수력원자력㈜
뉴트리라이트
두산에너빌리티
OB맥주 (한맥)
네이버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
한국거래소
드비치골프클럽 주식회사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Busan Metropolitan City
Korean Film Council
BUSAN CINEMA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