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우아한 시체> : 초현실주의와 람보르기니

By 은보람

 

 

 

작품을 접하기에 앞서 이 영화의 제작 방법론에 대해 알지 못했다. 보는 내내 퍼즐과도 같은 복잡한 영화라고만 느끼고, 그 이야기의 조각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어 붙이려 했다. 열심히 머리를 굴린 만큼 어느 정도 해석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했던 내게 GV에서 김경래 감독이 말한 영화에 대한 설명은 내 해석을 여기저기 무너뜨렸다. 퍼즐들은 다시 해체되어 나뒹굴었다.

 

나중에 안 사실로는, 이 영화는 애초에 매끄럽게 완성된 무언가를 향해 가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아한 시체>는 20세기 초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택했던 ‘우아한 시체’ 놀이의 방법론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결말을 정해 두지 않고 영화를 찍는 도중 이야기의 궤적을 흩뜨리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영화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영화였고, 그에 대한 찬양이었다. 해석 자체가 매끄러울 수 없었고, 완성된 해석이 고정되지 않는 작품이었다. 상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주차장에 세워진 미끄러질 듯 아름다운 람보르기니 차를 봤다. 이 신형 차는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을 목적으로 모든 미적 요소가 완전하게 계획되어 있었고, 있어야 할 곳에서 제 기능을 완벽하게 해내며 안착해 있었다. 기분 좋은 안정감이 느껴졌다. 한곳을 향해 모든 요소가 흐르는 오브제는 나를 기쁘게 한다. 왜 나는 이토록 완전한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완벽하게 계획된 람보르기니보다 어쩌면 이 수수께끼 같은, 복잡하고 난해한 영화가 지리멸렬한 실재의 세상과 더 닮았는데도 말이다. 되짚어 보니 실재에 지친 내가 그리는 것은 항상 세상 반대편에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리멸렬한 현실을 감각하고 그 안에서 유영하는 것은 근원적 행위다. 예술은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탐색하는 인류의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한곳을 향해 질주하는 람보르기니의 농축된 디자인도, 그 모든 것에 실증을 느끼고 아이처럼 궤적을 흩트리는 이 영화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치열한 삶이자 그것에 대한 탐구다. 우리는 결국 살아야 하니까.

 

어디까지 치닿을지 모르는 내 마음속 소리의 ‘우아한 시체 놀이’를 그만두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조각난 영화가 그리려는 한 가지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랑’이다. 실체 없는 대상에 대한 감정을 어디까지 몰아부칠 수 있는지, 영화는 그것을 극한으로 끌고 간다.

 

실재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 사이에서 주인공 민주를 사로잡는 건 언제나 후자였다. 벤이 준 젤리는 씹는 감각으로만 민주에게 느껴질 수 있다. 실재하는 상철의 마음이 민주에게 가닿지 않는 것처럼 모든 실재는 감각을 통해서만 그 존재가 가늠된다. 다시 말하면, 감각은 실재 그 자체다. 느껴지지 않으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감각은 또한 실재에 기인한 것이기에 반전의 논리도 성립된다. 그래서 민주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위태로워 보인다.

 

민주는 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종교’라고 말한다. 맹목적인 신앙 앞에서 실체의 부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경우엔 믿음만으로도 존재가 완성된다. 그렇게 양극단을 끊임없이 오가던 <우아한 시체 놀이>는, 애초에 이 작품이 시작한 놀이처럼 덩어리 없는 대상을 더듬는 감각들만 남기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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