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철들 무렵> : 비극과 희극의 티키타카

By 정종윤

​인생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이 난감한 질문에 대해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근사한 답변을 남겼다. 삶이 시작됨과 동시에 죽음이 따르고 낮은 밤을 예감하며 밤은 곧 아침을 기다린다. 인생이 주는 고통이 때로 죽음을 예감할 만큼 힘겹지만 희망을 예견하기도 한다. <철들 무렵>은 여러 사연이 얽힌 대가족을 이야기하면서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삶의 모순되고도 다면적인 얼굴을 진중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로 포착한다.

 

영화는 곧 구순 잔치를 앞둔 조모(원미원)와 암 전이 판정을 받은 아버지 철택(기주봉)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초반에 서로 관련이 없어 보였던 인물들이 대가족이라는 연관성이 드러나면서 서사는 그들 사이 갈등, 각자가 당면한 복잡다단한 문제를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해학적으로 그린다. 영화는 드라마와 블랙 코미디의 경계를 부담스럽지 않게 넘나든다.

 

<철들 무렵>의 인상적인 부분은 무엇보다 선문답의 티키타카라고 하겠다. 암 말기 판정을 받고 짐짓 무겁게 흐를 수 있는 분위기이거나 긴 설명이 필요한 장면에서 '처음이야?'.'몇 기야?'등의 툭툭 던지면서 오가는 맥락 없는 문답이 화면에 뜻하지 않은 활기를 불어넣는다. 물론 영화는 이와 다른 장면에서 때로 심각한 대화를 배치함으로써 분위기의 균형을 유지한다. 딸 정미(하윤경)가 단역을 전전하는 무명 배우이지만 그녀가 맞이한 암담한 상황이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는 이중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와 딸의 간병 이야기가 극의 중심축을 이루고 여기에 조모의 회고 나레이션이 분위기를 갈무리하며 뒤따라간다. 특이한 점은 이야기의 기둥과 할머니의 해설이 큰 관련이 없다는 것. 겉도는 듯한 두 이야기는 흑백 사진으로 시작한 조모의 회고가 그녀의 젊은 시절을 거쳐 한국의 엄혹한 현대사를 아우르면서, 극의 중반 이후부터 현재와 과거가 묘하게 겹치는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즉 현재의 삶을 끌고 가는 동력에서 과거의 감촉이 느껴지면서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특이한 감각이 발생하는 것이다.

 

<철들 무렵>에서 과거는 인물들의 대화와 선택에 무시할 수 없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특히 현재의 고단함이 밀려들 때면 그 압력은 더 커진다. 인물들 각자의 삶에는 해결해 주기 어려운 문제가 있고 그 파장이 현재의 근간을 위협할 때 과거가 순식간에 쏟아져 나와 서로에게 상처를 낸다. 그것은 때로 악몽의 형태로 때로 파괴적인 언쟁의 형태로 나타난다. 과거는 결국 기억으로 저장될 수 밖에 없고 각자의 형태는 필연적으로 다르다. 같은 시공간을 통과했음에도 서로 낯설어하고 서운해하며 놀라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으리라.

 

<철들 무렵>에서 딸이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는 장면은 그래서 특별하다. 영화는 여기에서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교차시키면서 진부하지 않은 안온함을 선사한다. 그 모습이 여전히 피투성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치유'라기 보다 오히려 '수용'처럼 보인다. 그것은 상처와 통증이 가시지 않았지만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영화는 인생의 비극과 희극을 동시에 바라보는 시선을 특유의 이중 구조로 구현한다. 이 작업은 단순한 대비를 넘어 서로 다른 시간대의 목소리를 엮으면서 하나의 선율을 만들어 낸다. 과거와 현재의 목소리가 예감하는 건 결국 미래이기 때문이다.  

BNK부산은행
제네시스
한국수력원자력㈜
뉴트리라이트
두산에너빌리티
OB맥주 (한맥)
네이버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
한국거래소
드비치골프클럽 주식회사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Busan Metropolitan City
Korean Film Council
BUSAN CINEMA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