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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NO.3> : 말하지 않고 발화하는 방법

By 서은교

  

 

  떠나고자 하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했나. 로라(폴라 비어)는 현실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부유한다. 남자친구와의 시간 약속을 잊고, 소지품을 잃어버리고, 좀처럼 타인과의 대화에 끼지 못하던 그녀가 문득 선명하게 발화하며 도드라진다. "집에 가고 싶어." 

 

 

  로라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왔던 길을 돌아가다가 두 사람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진 것은 아슬아슬하지만 자연스럽게 보인다. 고성과 짜증이 오가다가 두 사람이 탄 차가 굴러 운전석에 있던 로라의 남자친구가 즉사하고, 사고 현장의 근처 시골집에 혼자 살던 낯선 여성 베티(바르바라 아우어)가 로라를 빠르게 구조한 것까지도 일면 마땅한 흐름 속에 있다. 그런데 로라가 다시금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며 또 한 번 돌출한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여기 머물고 싶어요." 

 

 

  로라가 베티의 묵묵한 환대 속에서 일상과 동떨어진 시골집에 안착하며 미러 NO.3(크리스티안 페촐트, 2025)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어딘가 조금씩 고장 나고 망가진 베티의 시골집은 로라로 인해 사람 사는 온기를 얻고, 로라와 베티는 공통된 공간에서 하루를 풍성하게 공유해나간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가 단순히 평온하게 흐르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베티의 시골집에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은은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로라가 베티의 남편과 아들을 만나는 장면은 침묵으로 적나라하다. 함께 앉은 식탁에서, 로라가 몸소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먹지만 서로가 서로를 말없이 침범하는 호흡으로 영화의 리듬이 불거진다. 

 

 

  카메라는 말수 없는 시골집 사람들의 발화를 쫓는 대신 표정과 눈빛을 정밀하게 비춘다. 이동하는 풍경을 자동차 차창 너머로, 혹은 고즈넉한 시골길을 따라가며 아슬아슬하게 고립된 기류를 고스란히 담아내기도 한다. 그렇게 카메라가 시골집의 열린 대문으로, 2층 차창으로 구분되는 공간감으로 인물 사이의 거리감을 섬세하게 캐치할 때면, 이런 질문이 떠오르는 것이다. 과연 비밀이란 말하지 않는 것일까,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상처는 드러나는 것일까, 파고드는 것일까. 어쩌면 이 집 사람들은 매일 무언가를 목격하고 감각하지만, 그것을 서로 공유하지 않는 이유는 각자 요동치는 내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의 농도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던 인물들이 어느 순간 한 프레임에 들어와 같은 음악을 함께 듣고 있을 때 한층 깊어진다. 영화를 감싸는 피아노 테마곡은 시골집의 낡은 피아노와 오래된 차량 내부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오며 인물이 공존하는 장면을 아름답게 빚는다. 영화는 각자의 입장을 납득시키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개개인이 어떤 사정과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파고들지 않는다. 다만 침묵의 공백에 선율을 배치한다. 음악이 흐르고, 시간이 지난다. 말은 무용하고, 인물은 다시 이동한다. 함께 하면서도 각자 침잠하는, 어긋나있는 듯 하지만 조화로운 이 풍경을 영화는 느긋하게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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