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지우러 가는 길> : 그 길 끝에는 밝음이 있기를

By 임수진

교사의 제자 성추행 사건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등장하는 사회 파문 중 하나 이다. 수많은 반복에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사건이고 소재이지만 볼 때마다 놀랍고 기가 막힌 건 피해자가 어린 학생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해자는 사회적 위험 속에서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회적 어른이자 ‘선생님’. 어째서 이런 엄청난 일이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일까. 왜 아이들은 보호 받지 못하고 벼랑 끝으로 내몰린 걸까.  

 

<지우러 가는 길>은 흔히 뉴스에서만 바라보던 교사-제자 성추행 사건의 단면을 넘어, 그 사건을 견디고 풀어나가야 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윤지는 학생들에게 인기 많고 친절한 담임 선생님 종성과 비밀 연애를 이어 오다 임신까지 하게 된다. 윤지가 아이를 지우길 바라는 종성, 하지만 윤지는 아이를 낳아 자신도 ‘가족’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런데 종성이 아무런 말도 없이 연락 두절되며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학교에는 종성의 아내가 찾아와 난리가 나고 경찰에 실종신고가 되고 학교 주변에는 현수막과 종성을 찾는 포스터가 붙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다. 자신이 아이를 지우면 종성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윤지는 온라인에서 불법적으로 판매되는 낙태약을 구하게 되고 임신 중절을 위한 시도를 하게 된다. 그 곁에는 윤지의 룸메이트 경선이 함께 한다.

 

교사-제자 성추행 사건의 중심에서 보호 받아야 하는 건 바로 아이들이다. <지우러 가는 길>에서 보여주듯 중절을 해도, 하지 않아도 사회의 시선과 헤쳐 나가야 할 과정은 아이들에게 잔혹할 수밖에 없다. 뉴스에서 스치듯 지나가버린 피해 아이의 상황과 그 이면을 영화에서 꽤 담담하게 주목하고 있다.  

 

- 어른의 부재

 

영화<지우러 가는 길>은 결국 ‘어른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성인(成人), 성년에 도달한 자. 나라마다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19세 이상이 기준이 된다. 어른은 다 성장한 사람, 그리고 다 성장해서 사회에 나가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과 성인은 의미가 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의 나이가 된다고 해서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릴 적에는 보통 주변의 성인은 다 ‘어른’ 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건 성인이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나이만 먹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윤지가 임신 중절을 결정하고 그 당혹스럽고 험난한 순간들에 윤지 곁에는 룸메이트 경선만이 있다. 영화 속 많은 성인(成人​)들이 존재하지만 ‘어른’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윤지의 여정에 어른은 잠시잠깐 행인처럼 스치듯 지나간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어른이 없다. 경선이와 함께 처음 산부인과에 가서 만난 의사도, 중절수술에 대해 설명해 주는 간호사도 매섭도록 그들의 사회적 역할에만 충실할 뿐,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들에 대한 자비란 조금도 없다. 철저히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현실만을 일러줄 뿐이다. 

특히, 종성의 아내는 갑작스런 남편의 사고와 뒤늦게 알게 된 진실로 남편에 대한 배신감까지 그녀에게도 쉽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진실을 덮기 위해 고등학생인 윤지를 상대로 행하는 일들은 그저 잔혹하고 잔인한 현실처럼 보여졌다.   

 

그래서 윤지와 경선이 더 어른처럼, 어른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보다 사람을 믿고, 약속을 지키려고 하고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이 곳곳에 담겨 있다. 그들이 선택한 것도 아니고 그저 주어졌을 뿐인데, 힘든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일찌감치 애어른이 되어버렸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너무 이르게, 어른이 되어버린다는 것도 슬픈 일이라는 것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된 주인공의 눈망울에서 전해진다. 

 

- 마음껏 잘해주면 안되나요?


<지우러 가는 길>을 본 관객에게 가장 인상 깊을 대사는 아마 “마음껏 잘해주는 것보다 책임질 수 있을 정도만 사랑해주는 게 더 큰 사랑이다”일 것이다. 마음에 오래 남으면서도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마음껏 잘해주고 싶어 하는데, 아이들 주변에는 항상 책임지지 않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저 순수하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점점 상처로 물들어 간다. 그 상처를 보듬어주는 건 결국 아이들, 윤지와 경선이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산길, 그 길을 각자의 헤드랜턴과 오롯이 서로에게만 의지해 걸어가 그들의 비밀을 덮고 간절히 기도하며 돌아온다. 그들의 주변에 괜찮은 어른, 그들을 보호해줄 어른이 한 명만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꼭 붙잡은 윤지와 경선의 손, 서로에게 기대 편안히 의지하는 그 둘의 모습을 보니 그래도 다행이라 안도하게 된다. 그저 묵묵히 손잡아 위로하며 마음껏 응원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이미 일찌감치 어른이 되어버린 그들이기에 더 기대되는 나날들. 

 

윤지와 경선의 앞날에 ‘행운을 빈다.’   

BNK부산은행
제네시스
한국수력원자력㈜
뉴트리라이트
두산에너빌리티
OB맥주 (한맥)
네이버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
한국거래소
드비치골프클럽 주식회사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Busan Metropolitan City
Korean Film Council
BUSAN CINEMA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