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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 : 집으로 가는 길의 온기

By 신종민

  박선주 감독의 <미열>을 처음 만난 건 2년 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다. ASIFF 버전의 <미열>은 러닝타임 30분짜리 버전이었고 같이 관객심사를 진행한 많은 20~30대 여성 친구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개인적으론 뭔가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올해 KBS 독립영화관을 통해 만난 <미열>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최우수상 버전(36)에 가까운 35분짜리 버전이었지만 오히려 더 짧게 느껴졌다. 이 단편영화 <미열>의 이야기를 같은 주연 배우들과 함께 장편으로 확장시킨 <비밀의 정원>114분은 어떻게 느껴질까가 궁금했다.

 

  영화의 시간을 늘리고 줄이는 일은, 또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 찍은 걸 아까워하며 계속 붙이다간 단편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리듬과 밀도감을 잃을 수 있고, 걷어내기 시작하면 쓸게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대다수의 영화는 늘어난 경우보다 덜어낸 경우가 더 매력적인데 하물며 장편으로의 확장은....... 그래서 가끔 단편과는 아예 결이 완전 다른 영화를 만나는 경우도 종종 만나게 된다.

 

   <비밀의 정원><미열>에서 공간과 시간 그리고, 가족이 확장되었다. 이사 갈 집은 그대로지만 떠나야 할 아파트가 추가되었고, 이름이 달라진 정원(한우연 분)과 상우(전석우 분)의 일터 모습도 보여준다. 하루 반나절의 이야기에서 꽤 여러 날의 이야기로 늘어나고 엄마와 동생, 이모네로 정원의 가족들이 추가되었다. 단편을 본 입장에서는 몰랐던 전사와 배경을 다시 영상으로 만나게 되는 기분도 들었다. 공간의 확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수영장이 아닐까 싶다. 벗어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물의 상징적 의미를 생각케 되고 도식적이라고 해도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던 물의 이미지, 정원의 허우적거림과 5번 레인의 물귀신 소문, 또 동호가 가지는 은유는 영화의 정서와 정원의 심경을 좀 더 사려 깊게 헤아리도록 만들어준다. 시간과 가족의 확장은 이 영화를 2차 피해에 대한 배려 없는 공권력에 대한 비판과 살아있는 현실 부부의 리얼리티 멜로를 넘어 성장담으로 읽히게도 만든다. 박선주 감독은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있어 굉장한 재능이 있어서 추가된 가족 모두 기능적으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극을 생동하게 만든다. 물론 오민애, 정다은, 유재명, 엄혜란 배우 모두 더할 나위 없는 연기로 캐릭터 구축과 정원과 상우의 내적 성장에 힘을 더한다.

 

   확장된 걸 살펴봤으니 이젠 사라진 걸 찾아볼 차례. 아직 풀지 못한 짐으로 가득 차 있던 은주(<미열>에서 한우연 분)의 방과 아기가 수영장과 유산으로 사라진 건 좀 아쉽다. 그 방과 갓난아이의 칭얼거림이 전하던 밀도감이 느슨하게 변형된 것 같아서이다. 단편들을 봐도 그렇고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장점이 더 진하게 묻어나오는 스타일을 인정하면서도 넓어지고 길어진 공간과 시간을 같은 밀도의 감정들이 채우고 있는지는 다시 한 번 더 감상과 더불어 생각해봐야 될 거 같다.

 

   하지만 이 영화의 온기는 변하지 않을() 거 같다. 왜냐하면 <미열>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인 집으로 가는 길, way back home 의 햇살과 정서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산책길 같았던 길이 인천에서 태안까지로 길어지고 늦어지지만 새벽과 블랭크 뒤의 오후 바닷가 산책 때 보여준 햇살은 <미열>의 그것과 같은 온도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많은 것이 확장되고 사라지는 장편화의 과정 중에도 온기만은 변함이 없어서 고마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