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오프닝 시퀀스는 검은 칠판을 등에 지고 움직이는 일군의 남성들을 보여준다. 교실 벽면에 부착되어 있어야 할 칠판은 이 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인 피사체가 되어 이란과 이라크 접경지대를 이동한다. 국가가 부재하는 쿠르드족 디아스포라를 다룬 <칠판>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첫 번째 장편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칠판은 가난과 권리 없음의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할 인류의 지식을 상징하지만, 이들이 찾아 나선 어린 세대들은 미래를 대비할 시간이 없다. 아이들이 밀수품을 국경지대로 실어 나르며 끊임없이 이동한다면, 노년 세대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국경을 향한다. 사미라 마흐말바프가 포착한 국경의 풍경은 지독히도 현실적인 비현실성과 만나며, 쿠르드 디아스포라의 삶에 놓인 불확실성과 이동성을 수려하게 형상화한다. (홍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