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을 가져온 페르디난드 대공의 서거 100주년을 맞아, 사라예보의 호텔 유럽은 하루종일 부산하다.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갈라 디너에 맞춰 EU 대사가 펜트하우스에 도착하고 옥상에서는 100주년 기념 TV 프로그램 제작으로 정신없다. 하지만 호텔 유럽의 소동은 그 내부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두 달째 임금을 받지 못한 직원들은 파업을 준비 중이고, 호텔 지배인 오메르는 파업 저지를 위해 지하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폭력배 엔조와 손을 잡는다. <사라예보의 죽음>은 유럽의 화약고 발칸, 그중에서도 20세기 동안 가장 비극적인 궤적을 지나온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현대사를 호텔 유럽이라는 알레고리적 공간에서 다시 써나간다. 이념, 정치, 민족의 차이를 둘러싼 반목의 역사는 자본의 폭력과 미디어 재현, 인종과 계급 갈등 등 현대 유럽사회를 몰아치고 있는 이슈들로 이어진다. 호텔 유럽은 지난 세기의 외상을 박제하는 상징이 아니라, 역사의 상처가 결코 아물지 않은 채 반복되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증명하는 치열한 격전장이다. (박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