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한 인간의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레슬러 장 모톤은 레슬링 월드 챔피언을 거머쥔 순간, 그의 15살 난 딸이 독일군에게 집단강간으로 임신을 하게 된다. 세계라는 무대를 버리고 딸이 있는 벨기에로 다시 돌아온 그는 딸을 그렇게 만든 독일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복수로 선택한 여정이었지만, 전쟁은 개인의 그 무엇도 성취할 수 없게 한다. 결국 사랑하는 딸 뿐 아니라 그 자신도 모두 잃어버린 채 폐허와 상처만 남겨놓는다. 영문제목 Cafard는 극 중 등장하는 바퀴벌레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울증과 좌절감을 동반한 감정을 지칭하기도 한다. 실화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전쟁이라는 어른들의 잔혹동화(!)를 강렬한 터치를 가진 애니메이션으로 담아낸다. 애니메이션이 디즈니 방식의 어린이나 가족 영화가 아니라 재현 불가능한 기억과 상처와 같은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하는 장치임을 읽어내게 한다. (이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