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영화감독 김은 왕래 없이 지냈던 사촌형 일규의 전화를 받는다. 일규의 모친과 6.25전쟁 때 헤어져 북한에 살고 있는 부친이 중국 연길에서 상봉하기로 한 소식을 전하며,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김이 동행해 줄 것을 부탁한다. 속초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한 여자(영화)를 보게 되고, 잠시 여자와 눈이 마주치며 마음이 끌린다. 속초의 민박집에서 우연히 영화를 다시 만난 김은 태백으로 동생을 찾으러 가는 영화를 무작정 따라 나선다. 부산에서 독립적으로 힘겹게 영화를 만들어온 전수일의 이 영화를 일종의 자화상으로 읽는 건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개와 늑대의 시간>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주인공인 영화 감독이 억지로 불려나간 철책선 마을은 그가 관심을 가진 적이 없는, 역사적 시간이 새겨진 공간이다. 그곳에서 그는 영화라는 이름의 여인을 만난다. 그는 그것을 영화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잠시 그를 흥분시켰던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낯선 마을에서 그는홀로 남겨진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이 작품은 집단적 상처를 낳은 역사적 시간과 성적 욕망이 지배하는 사적 시간의 경계에서 영화의 존재의의를 다시 질문한다. 허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