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칸영화제 경쟁부문 <극장전>은 ‘극장(영화)에 관한 이야기’(劇場傳)이자 ‘극장 앞에서 벌어지는 이야기’(劇場前)이다. 관객 동수는 암으로 죽어가는 선배 감독의 영화를 본다. 그 영화 속에서 고등학생 상원은 옛 여자친구 영실을 만나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밤에 자살소동을 벌인다. 동수는 극장 앞에서 자신이 본 영화 속의 여배우 영실을 만나 영화 내용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말은 다르다. 영화와 현실의 통로를 관통하는 미묘하고 복합적인 이야기가 홍상수 특유의 유려한 연출로 그려진다. 한국의 가장 독창적인 영화 예술가 가운데 한사람인 홍상수는 여기서 미묘한 기법상의 변화를 시도한다. 전작들에서 개별 프레임들이 지녔던 강렬한 입체감을 포기하고, 과격한 줌인과 줌아웃을 통해 프레임의 안정성을 뒤흔드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가 지닌 활력과 견고한 형식미는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의심할 수 없는 홍상수의 걸작. 허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