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홍콩의 골든하베스트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이소룡의 후계자를 태권도 강국에서 찾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사적지를 촬영지로 활용하기 위하여 한국과 합작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태권도가 중국 영웅의 무술로 전락하고 한국의 공간이 중국 무협신화의 공간으로 탈바꿈된 것은 국적 불명의 논란을 일으키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흑권>은 이례적으로 한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권격영화이다.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명성을 떨치던 이준구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투사로 등장한 것이다. 이미 40대에 접어들었던 이준구가 ′제2의 이소룡′ 으로 등극하는 것은 역부족이었지만 강하고 절도 있는 손동작과 통쾌한 발차기로 화면을 태권도의 활력으로 채우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영화의 공간 역시 기와집이 모여 있는 동네의 뒷골목을 활용하며 현실적인 한국 공간을 재현하고 있다. 합작영화 중 가장 ′한국적인 정체성′ 을 드러내는 이 영화는 의외로 홍콩 감독인 황풍이 단독으로 연출하였다. 와이어 액션이나 특수효과보다는 순수한 몸동작과 독특한 앵글로 승부하는 그의 연출기법은 화려함보다는 강인함을 내세우는 태권도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조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