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촬영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합작영화인 <생사결>은 <천녀유혼>과 <동방불패>로 중국 무렵에 새로운 획을 그었던 성소동 감독의 데뷔작이다. 하지만 데뷔작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생사결>은 무협영화 미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땅을 뚫고 솟아 오르고, 하늘을 부유하는 인간연 편대와 지축을 울리는 거인 닌자와 같은 무협영화의 상상력은 화면을 사로잡는 완벽한 무술연기와 속도감 있게 공기를 가르는 와이어 액션으로 스크린 속에 생생하게 재현된다. 제목인 "생사결"은 중국과 일본의 제일 고수들이 10년에 한 번씩 모여 서로의 명예와 목숨을 걸고 실력을 겨루는 대회를 이른다. 그러나 중국의 고수를 제거하려는 일본의 음모로 참가자들은 대회가 열리기도 전에 참혹한 죽음을 당한다. 명예를 중시하는 중국과 일본의 제일 검객은 복수와 권력욕으로 얼룩진 강호를 떠나 그들만의 생사결을 펼친다. 전통적인 무협영화의 주인공은 문파와 국가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으로 존재한다. 이 전통에 작별을 고하며 개인의 신념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모습은 비장미 넘치지만 동시에 자기 파괴적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최후의 대결은 너무도 적절하게 부산 태종대의 자살바위에서 펼쳐진다. (조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