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쿠르드족의 가혹한 운명과 슬픈 역사를 꾸준히 이야기해온 바흐만 고바디가 이번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배경으로 또 다른 통한의 이야기를 한다. 이라크 국경지역,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임박했다는 소문에 사담 후세인의 핍박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그들 중에는 팔을 잃은 소년 헹고와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진 소녀 아그린이 있다. 이곳에서 나름대로 살아가는 법을 익힌 ′위성′ 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년은 아그린을 보고 사랑에 빠 진다. 그러나 군인들에게 겁탈당하고 아이까지 낳은 악몽 때문에 아그린은 늘 자살을 생각한다. 바흐만 고바디는 장편 데뷔작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을 만들기 전에 동명의 단편을 만들었듯이, 이번 작품을 만들기 전에도 <전쟁은 끝났다> 라는 중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모티브를 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작에서 그랬던, 쿠르드인의 테두리를 벗어나, 폭정과 전쟁이 모든 아이들을 짓누르고 있는 가혹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혼자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하며, 생계 를 위해 죽음의 위험도 불사해야 한다. 그 냉혹한 현실 앞에서 헹고의 예지능력도, ′위성′ 의 사랑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그린을 잃고 돌아서는 헹고의 모습은 이라크 땅에서 벌어지는 비극이 현재진행형임을 말한다. (김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