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로스타미 감독은 한 국제기구로부터 아프리카의 수백만 고아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한 장의 팩스를 받는다.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를 오랫동안 제작했던 손에는 이제 DV 카메라가 들려 있다. 황토빛 초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여행이 시작된다. 벌판을 배회하며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는 헐벗은 어린이들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아프리카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가 서구 자선가의 오만이 만들어 낸 시나리오라는 듯이,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카메라에 담긴 아이들의 표정은 싱싱하다. 카메라를 보고 장난감을 만난 듯 즐겁게 따라다니는 이들의 모습은 세계의 여느 어린이들과 다를 바 없다. 잔인한 내전과 질병으로 무수한 죽음과 폭력을 겪고 난 후에도 이들의 삶은 변함없이 계속된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 대규모 지진으로 가족과 집을 잃은 이란의 난민들이 천막촌에서 축구 경기를 시청하는 데 열중하는 것처럼. 이 영화를 보고 이 아이들을 돕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어떠한 고통을 겪더라도 변함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존경에서이다. 아프리카를 통해 인류의 ABC를 다시 일깨우는 작품. (남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