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800만 관객 동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통해서 ‘국민적 영화 교과서’가 되다시피 한 <친구>는 21세기로 막 접어든 시점에서 한국인들의 정치적 무의식과 강력한 집단주의적 심리를 읽어 볼 수 있게 해 준다. <친구>의 엄청난 성공은 구체적인 역사적 기표들은 제거된 채 신화의 차원으로 상승하는 시간성과, “우리 친구 아이가”라는 대사가 상징하듯이 강한 집단 정서가 환기시키는 허구적 동질감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대중적 흡인력은 감독의 개인적 체험으로 배어나는 살아 있는 기억과 제대로 조합된 장르 영화적 쾌락에서 비롯된다. ‘남성 성장영화’의 틀을 띠는 전반부에서 부산의 거친 바다와 뒷골목을 끈끈한 우정으로 누비는 네 친구들의 모습이 갖가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미지와 모티브들을 통해서 수놓아진다면, ‘갱스터 영화’로 나아가는 후반부에서는 비정한 이해관계와 폭력조직간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서 깨져 나가는 남성간의 연대가 비극적인 톤으로 묘사된다. (주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