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창가의 깡패 두목인 한기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대생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뚫어지게 쳐다본다. 여자는 허름한 모습의 한기를 싸늘하게 쏘아보고, 한기는 동물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어 강제로 긴 키스를 행한다. 정숙한 여자는 동물 같은 남자에게 심한 모욕을 주고, 남자는 이어서 존 파울즈의 주인공처럼 여자를 쫓아다니다 나비를 잡듯이 그녀를 채집해 창녀촌에 가둔다. 그리고 매일 밤 비밀 유리를 통해 밀실 안에 갇힌 여자를 훔쳐본다. 늘 도발적인 제재를 포착해 능란한 이야기 솜씨로 풀어 가는 김기덕 감독은 전작들처럼 이번에도 인간적인 삶의 조건들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밑바닥 인생의 소외와 폭력성을 그리고 있다. 감독은 주인공 한기에게 거의 대사를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그의 억압된 성적 욕망도 늘 정상적인 모습으로 표면화되지 못한다. 나쁜 남자의 악의 근원마저도 감추어져 있다. 이 하층계급의 동물들도 문명화된 인간들 못지않게 의사소통의 어려움 속에서 사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섯 편의 영화를 모두 제작비 25만 달러 정도의 저예산으로 만들어 온 김기덕 감독이 처음으로 62만 달러의 빅 버젯을 들인 작품이기도 하다. (한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