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경기와 연쇄 살인 사건. 연결되기 힘든 이 두 사건이 박종원 감독의 신작에서 서로 뒤엉킨다. 월드컵 16강 본선 한일전이 열리는 두 시간 동안 ‘파라다이스 빌라 ’의 일곱 개 방에서 살인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살인 빌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미래 공간의 가상적 인물들이 아니다. 인터넷 게임 안에서 잃어버린 무기를 되찾기 위해 빌라를 찾아온 청년, 아버지 같은 남자와의 섹스로 살아가는 어린 소녀, 몰래카메라에 자극적 그림을 담아 돈을 벌려는 추한 고교생들, 불륜을 벌이는 남과 여, 살인 사건에 휘말리면서 악마처럼 변해가는 펀드 매니저, 정수기를 팔기 위해 옥상 물탱크에 흙을 집어넣는 여자... 바로 오늘 신문의 사회면에서 만날 수 있는 일상 속의 인물들이다. 영화가 그리는 것은 이 평범한 사람들이 토해 내는 광기와 폭력의 본성이다. 어쩌면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역시 집단적 광기와 폭력성의 세련된 표현일지 모른다. 권력의 본질, 인간의 이중성 등의 관념을 영화로 옮기는 방식을 즐기던 박종원 감독이 새로운 출발을 시도했다. 일상에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카메라에 담은 뒤 해석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파라다이스 빌라>는 그점에서 흥미롭다. (한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