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포르노 영화의 주인공이고 싶다.＂ 고 말한 배우 서갑숙, 그리고 그녀가 빚어 내는 레즈비어니즘에 가까운 사랑. 소재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이 아슬아슬한 요소들로써 뛰어난 인간애 드라마 한 편이 만들어졌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봉자>는 ＂착하디 착해서 바보 같은 여자가 있다. 그 여자의 삶에 파문이 생기려면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 바보 같은 여자는 나이 서른여섯의 봉자다. 김밥 마는 일에 인생의 의미를 느끼는 그녀는 정종을 많이 마신다는 이유로 김밥집에서 쫓겨난다. 그 날 집에는 나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소녀가 들어와 잠을 자고 있었다. 이 소녀의 출현에 의해 봉자의 일상은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 차게 된다. 김밥과 정종 속에 억눌려 있던 봉자의 욕망은 풀려나고, 숨겨져 있던 소녀의 끔찍한 과거 역시 하나씩 드러난다. 길고 긴 경험의 끝에서 두 여자는 슬프게 운다. 중견 박철수 감독은 이 간편한 디지털의 시대에도 영화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들은 변함없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봉자>에서 증명해 보인다. 대전시에서의 올로케 촬영에 의해 대전을 독립영화의 메카로 만들려는 그의 의지도 평가할 만하다. (한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