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을 수장시킨 [쉬리]는 99년 한국영화의 상업적 경향을 대표하는 영화다.강제규 감독이 제시한 ＇새로운 한국영화의 대안＇은 멜로드라마와 액션을 혼합하고,할리우드식 볼거리 중심의 스타일과 한국적인 주제의식을 한 자리에 심어 놓았다. 북의 이방희는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남한에서 요인 암살 임무를 수행한다.그녀를 쫓던 OP요원 유중원의 눈앞에서 무기밀매상이 역시 이방희의 손에 살해되고,고성능 액체폭탄이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탈취된다. 사건을 추적하던 유중원은 범인인 이방희가 자신의 약혼자임을 깨닫는다. 수만의 관객이 운집한 잠실 경기장에 폭탄이 설치되고, 이제 그들은 분단된 조국의 운명처럼 서로에게 총을 겨눈다. [쉬리]는 남북한 관계를 ＇적과 나＇라는 이분법의 구도 안에 묶어 두지 않는다.북한 공작원들의 행위는 정당성이 부여되고,인간적인 깊이를 지닌다.그들이 부르짖는 조국통일은 고상한 이념의 투쟁이 아니라 생존의 투쟁이다.여기에서 그들의 죽음은 소멸된 위협이 주는 안도감보다는 분단 현실릐 비극을 환기시킨다.상업성을 내세운 강제규의 대안이 빛을 발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쉬리]는 한국영화의 예술적 대한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영화의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