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 뚜르니에의 단편 소설 <히이드 벌판의 수탉>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반 르 무완 감독의 첫 장편 영화는 어쩐지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그것이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흑백 영화 <카프카> 든 카프카의 단편 <변신> 이든... 그로테스크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표현주의적 영상미는 첫 장면부터 영화에 대한 신선한 기대를 갖게 한다. 평생 작은 사람으로 있을 수 밖에 없는 난쟁이 뤼시엥 로트는 변호사 사무실의 높은 의자에서 의뢰인을 대신하여 점잖게 욕설을 퍼붓는 편지를 쓰는 업무를 맡고 있다. 어느날 그의 교묘한 문장력을 재미있게 여긴 대부호 백작부인의 호출을 받고 그녀의 궁전 같은 집을 방문한 뤼시엥은 자신의 신체적 조건 때문에 나이 서른이 되도록 금지 당했던 데카당스의 단맛을 보게 된다. 한번 열린 욕망의 문은 그를 억눌린 현실에서 해방시키지만 나아가 범죄의 길로까지 인도하게 되는데... 결국 그는 서커스 단으로 상징되는 꿈과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외줄타기를 하는 천사 같은 소녀의 수호 천사가 된다. 빛과 그림자, 어른과 동심의 세계, 그 경계와 만남의 희비가 엇갈리는 시적인 작품. (윤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