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던 1953년 2월, 교착전이 한창인 동부전선 최전방 최후의 격전지 애록고지의 실체를 둘러싸고 빚어낸, 야심적 대 휴먼‘ 전장’ 드라마다. 감독이 역설했듯, 전장은 <고지전>의 진짜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시체들로 뒤덮인 고지를 훑으며 끝맺음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나듯, 평지 아닌 고지에위치한 전장의 강렬한 이미지들은 그 어떤 전쟁물의 스펙터클을 압도한다. <고지전>이 그렇다고 전장의 스펙터클이나 여느 전쟁 대작의 상투적 드라마 따위로 승부를 거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전장의 비장함 및 전쟁의 허망함, 그리고 베일 쌓인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보다 더 큰 초점을 맞춘다. 그로써 영화는, 감독이 참고했을 법한 테렌스 맬릭 감독의 <신 레드 라인>에 근접?조우한다. 맬릭의 전쟁 걸작이 그랬던 것처럼, 개별 인물들 각각에 생명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장르로서 전쟁영화를 넘어서는 것. 배우들의 열연이 영화에 남다른 활력을 부여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파수꾼>을 통해 발견된 이제훈은 발군이다. (전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