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에서 리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눴던 차우모완은 아직도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남아 있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꿈을 꾸고 있다. 이번에는 고급 콜걸 바이 링과 호텔 주인의 딸 왕징웬, 도박사 수리쩐 등 상대가 많아졌다. 게다가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자신의 분신 역시 왕징웬과 닮은 인조인간과 사랑과 이별을 한다. 그런데 바이 링, 왕징웬, 수리쩐, 인조인간 모두가 리첸의 복제인간과도 같다. "그날 난 알았다. 우린 살아가면서 수많은 수리쩐을 만날 수 있음을.." (차우모완의 독백 중) 왜, 차우모완은 수많은 리첸, 또는 수리쩐을 만나고 헤어졌을까? 그것은 ′사랑′ 이 지닌 치명적인 본질 때문이다. ′사랑′ 은 인간으로 하여금 ′오해 와 ′착각′ 을 하게 만든다. 인조인간이 피로해지면 반응이 하루나 이틀 정도 늦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그 인조인간이 자신의 사랑을 언젠가 받아줄 것이라고 믿는 소설 속의 차우모완처럼. 하지만 사실은 그 인조인간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프로포즈에 대해 반응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는 뒤늦게 깨닫게 된다. 호텔의 2046호 방, 1960년대 말의 홍콩과 싱가포르, 열차 2046, 이 모든 시 · 공간은 차우모완의 의식세계 속에 존재하며, 왕 가위는 그의 의식세계 속에서 마치 유영을 하듯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랑′ 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전통적인 내러티브 형식을 벗어버리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2046>은 그래서 우리의 감성과 의식을 함께 자극시킨다. (김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