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는 아직도 극장 간에 필름을 자전거로 운반하는 직업이 남아 있다. 이름하여 라가리스타. 20살 난 청년 그레고리는 라가리스타일을 하면서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부양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는 영사기사 지미, 극장 간판을 그리는 조아킨과 그의 조카 엘모, 한때 단역배우였던 오상 등 극장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웃들이 있다. 그들 모두는 영화와 관련된 추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레고리는 매춘부인 안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점차 어른이 되어 간다. 하지만 복합영화관이 늘어나면서 라가리스타와 영사기사는 점차 일자리가 줄어들고, 그레고리와 안나는 섹스영화에까지 출연하게 된다. 그레고리와 그 주변 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추억은 대부분 아름다운 것들이다. 하지만 현대화가 진행될수록 영화는 점차 인간미를 잃어 가고, 추악한 돈벌이로 전락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가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그레고리의 할아버지의 죽음은 전통적 의미의 영화의 죽음을 상징한다. 멜 치옹글로는 바로 그러한 아름답고 순수한 영화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