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장손> : 부드러운 두부처럼 부서지지 않게

By 윤지호

  영화의 제목을 먼저 보게 되면 의도치 않게 미적지근한 감정이 머릿속에 퍼져간다. 가부장제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걸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영제인 을 보면 이 영화가 변화하는 계절 속 가족의 모습을 담아낼 것이라는 걸 짐작하게 된다. 영화는 뿌연 연기가 자욱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느 공간을 비추고 여러 사운드만을 들려주며 시작한다. 사운드에 의지해 궁금증이 극대화가 될 때면 창문의 김 서림이 사라지듯 드디어 공간의 모습이 보인다. 첫 장면과 같은 알듯 말듯 미묘한 장면들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등장한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 시간의 여백을 두어 유발된 궁금증과 의문은 답답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저 영화의 시간적 흐름에 유영하듯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 곳곳에 뿌려둔 조각들이 맞춰지면서 깔끔하게 해소시켜주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간의 흐름, 계절의 변화가 있을 때나 사연의 실마리가 풀릴 때면 어김없이 손자인 성진이 등장한다. 중요한 순간에 매번 등장해서 성진이 구심점이라 착각하게 만들지만 이 가족 구성원의 중심은 할머니인 말녀라는 걸 알 수 있다. 성진의 카메라로 찍게 된 가족사진의 모습을 담는 것은 카메라 리모컨을 쥔 할머니이다. 조부모님 배웅 이후 기차 안 성진의 모습은 서울로 상경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지만 연결되는 장면인 할머니 장례식장으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온걸 알게 된다. 할머니의 부재로 인해 단단할 것 같던 가족의 애는 중간 중간 발생하는 사건들로 인해 애증이 되어가고 부드러운 두부처럼 으깨지고 부서져간다.

 

  상영시간이 2시간인 영화는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에 비해 대사의 비중이 현저히 적다. 담백한 영상과 사운드는 여름에서 시작해 가을과 겨울로 변화하는 계절 속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거리나 드론 샷 등 여름처럼 활발하고 생기 넘치던 장면과 싱그러운 사운드가 가득하던 초반과 다르게 건조하고 추운 겨울이 되어갈수록 카메라의 앵글은 차갑게 굳은 듯 정적이고 움직임이 거의 없다. 결말에 이르면 카메라의 움직임이 다시 시작된다. 성진을 배웅하고 난후 집으로 돌아가던 할아버지 승필은 갈림길에 서서 고민을 한다. 고심 끝에 산으로 향하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카메라를 끝까지 쫒아간다. 그 모습에 영화에 나왔던 승필의 아들이자 성진의 아버지인 태근의 대사인 이 추운 겨울에 산속으로 들어가면 찾을 수 없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할아버지가 앵글 밖으로 살아지면서 카메라의 움직임도 멈춘다. 굉장히 긴 롱 테이크로 진행되는 이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15년 전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으며 느낀 복잡한 감정에서 출발하게 되었다는 오정민 감독의 <장손>은 흘러가는 세 계절의 시간 속 변화하는 가족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감독은 GV를 통해 두부공장을 설정한 이유에 대해 말하며 가족이 마치 두부와 같다고 표현을 했다. 콩에서 시작해 두부를 만들기까지 굉장히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두부는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하지만 부드럽고 부서지기가 쉽다. 이게 마치 가족을 구성하는 형태와 모습이 닮아 있다고 비유를 했고 이를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가족이라는 형태는 어떠한 말로도 정의하기가 힘들다. 내탕과 온탕을 오가듯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증의 양가감정은 살아가면서 계속 반복이 된다. 영화는 끊어질 것 같지만 계속 유지되는 가족의 애를 두부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게 담아내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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