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시네마
홀드 미 타이트영화의 첫인상은 카사베츠의 <영향 아래 있는 여자>(1974)에 가깝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여성이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벌이는 일탈의 행동.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빈센트 갈로의 <브라운 버니>(2003)와 비슷한 유의 영화처럼 보인다. 길 위에 선 인물이 과거의 어떤 지점을 향해 거꾸로 떠나는 여정. 단순해 보였던 영화는 결코 선형적이지 않은 구조다. 30분 정도의 지점에서 얼핏 갈피를...
아시아영화의 창
화이트 빌딩한때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도시화와 근대화를 상징하던 화이트 빌딩. 세월이 흘러 건물은 낡고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간다. 철거와 이주를 앞두고 보상금 문제로 주민들 간 대립이 심화되는 상황. 영화는 힙합 댄서를 꿈꾸지만 녹록하지 않은 현실과 마주하는 청년 썸낭과 입주민을 대표하여 정부 측과 협상을 하지만 별다른 힘을 못 쓰는 그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진행된다. 실제 이곳에서 나고 자란 감독의 자전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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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다의 미용실<천국을 향하여>(2005), <오마르>(2013) 등으로 유명한 팔레스타인의 거장 하니 아부-아사드의 신작.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치열한 정보 전쟁에 이용당한 여자들의 숨 가쁜 생존 투쟁을 그리고 있다. 나디아는 머리를 자르러 후다의 미용실에 들렀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는다. 후다는 나다아에게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끄나풀이 되라는 협박을 한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집에 돌아온 나디아는 후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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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여행사를 운영하는 리우는 이윤이 나지 않는 회사를 빨리 팔아치우고 싶다. 어느 날, 입사한 직원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그의 가족과 온 마을의 친척들이 리우에게 몰려와 합의금을 요구한다. 한편 중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리우의 전처 타오징은 결혼을 미루는 애인과 그의 사춘기 딸 때문에 골치를 썩고, 내세울 스펙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는 아들 이판은 우연히 불법 자동차 운행을 하는 ...
아시아영화의 창
흰 암소의 발라드남편이 사형을 당한다. 아내는 남편의 죽음이 억울하다 하소연하고, 법원도 그들의 실수로 사행이 집행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것도 신의 뜻이 아니겠는가?" 법원의 태도에 낙담한 여자 앞에 뜻밖의 방문자가 등장한다. 죽은 남편의 친구라고 하는 남자는 여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돈이 없어 집에서 쫓겨나게 생긴 여자에게 빈집을 내놓기까지 한다. 남자는 과연 어떤 이유로 이 여자를 돕는 것일...
아이콘
히어로아스가르 파르하디는 윤리적 딜레마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영화작가다.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틈을 통해 인간의 실체를 보여준다. <히어로>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와 더불어 파르하디의 대표작으로 꼽힐 작품이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진실을 경험할 때까지 파고 또 파는 파르하디 미학의 정점이다. 주인공은 돈을 갚지 못해 감옥에 간 남자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우연히 금화가...
와이드 앵글
A.I : 인공불멸인공지능을 갖춘 자신만의 영원한 아바타를 생산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질문으로 출발하는 작품은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겨졌던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일부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로봇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3D 아바타 클론 등,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발전을 이룬 인공지능 산업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곧 현실로 ...
아시아영화의 창
18킬로헤르츠파르캇 샤리포브 감독의 전작 <보스의 비밀>의 주인공이 자본에 포획된 세계로 진입했다면, <18킬로헤르츠>의 주인공들은 약물 중독의 세계로 들어간다. 카자흐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혼돈과 암흑의 1990년대에 신생 독립국가에서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차지하던 자리를 자본이 대신했다. 급속한 자본화 과정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청소년들은 약물에 빠져들었다. <18킬로헤르츠>는 산자르와 자가가 어떻게 약물 중독의...
아시아영화의 창
200미터매일 밤, 무스타파는 발코니에 서서 200미터 앞에 떨어진 집의 아내와 아이들과 서로 불을 껐다 켜면서 안부를 전한다. 팔레스타인을 가로지르는 장벽 건너편에서 일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지만 서로 왕래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장벽을 건너려면 공항 이민국과 검색대를 통과하듯 지난하고 불친절한 행정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 마저도 때때로 기술적인 문제로 기약 없이 닫히기도 한다. 그 와중에 갑작스럽게 아들의...
월드 시네마
가가린파리 외곽의 집단주택단지 ‘가가린’에서 자란 유리는 우주 비행사가 되기를 꿈꾸는 열여섯 소년이다. 철거령이 떨어지자, 주민들은 떠나고 유리만 남는다. 이 영화에서 ‘가가린’이란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역사의 현장이다; 가가린은 프랑스 공산당이 고안한 주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이름을 따서 1963년에 건립됐고 2019년에 철거됐다. 극중의 아카이브 영상에 도시공사 출범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