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의 마술 램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세탁기>의 주인공 테오도 남부럽지 않은 뜻밖의 횡재를 한다. 그가 산 중고 세탁기가 신기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탁기는 일하고 싶을 때 스스로 작동하고 쉬고 싶을 때 멈춘다. 이 세탁기에는 어떤 여성의 영혼이 숨어 있었음을 알게 된 뒤 테오는 살아 있는 하녀를 부리듯이 그녀, 세탁기를 부려먹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감독 제임스 리의 롱 테이크 연출 스타일은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듯한 호기심 가득 찬 분위기를 화면에 자아내면서, 탐색하듯 신중한 호흡으로 쿠알라룸푸르에 사는 한 사내의 일상을 관찰하고 있다. 대사가 많지 않은 화면으로 집안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상황 묘사를 통해 은근한 유머와 풍자를 짚어내는 연출은 대만 감독 차이밍량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제임스 리의 개성은 현대의 냉랭한 동화라 할 이 이야기에 속에 은근히 배어 있는 초현실적이면서도 명랑한 분위기에서 빛을 발한다. <아름다운 세탁기>는 얼을 빼놓는 기상천외한 상황의 함정으로 관객을 서서히 끌어들이면서 현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모든 상품화된 관계를 재치 있게 비판한다.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