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청>, <보더 라인>의 이상일 감독이 만든 세 번째 영화 <69〉는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미국 팝 문화풍의 애니메이션과 1960년대 락 음악이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오프닝은 이 영화의 기운을 요약해준 다. 전 세계에 변혁의 바람이 불던 1960년대, 세익스피어를 우습게 여기고 밥 딜런에 심취하며 체 게바라와 마오를 영웅으로 모시던, 일본의 고등학생 켄과 아다마가 뭔가 일을 꾸민다. 학교 페스티벌에 선보일 기발한 아이템을 기획하 다가 바리케이트를 떠올린 것이다. 밤 11시, 켄 일당은 학교로 침투해 드디어 일을 벌인다. 다중분할 화면, 점프컷, 스위시팬, 느리거나 빠른 화면, 정지화면, 장난스런 장면 전환 등 온갖 영화적 장치들이 총동원된 이 영화에는 반항의 기 운이 가득하긴 하지만 우울하진 않고, 폭력이 횡행하지만 치명적이진 않다. 혁명이라고 말하기엔 쑥스러운 그것은 잘해 봐야 유희로서의 시위 혹은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깝다. 그러나 그게 전략이다. 나의 뺨을 치는 선생과 나의 목덜미 를 잡아채는 경찰에 맞서는 현명한 저항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들의 귀에 울려퍼지는 나의 웃음 소리는 적들을 무기력한 권태에 빠뜨릴 거라는 무라카미 류의 의견에 감독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듯하다. 결국 쓸데없 이 심각한 놈이 진다는 것이다. <69>는 무위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한 알의 비타민 같은 영화다. (강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