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날>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선언한 군주가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로 보낸 개가 말썽을 빚으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아주 조용하게 담는다. 민주주의나 기타 거창한 명분은 사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증명되고 때로는 어긋난다는 것을 이 우화적 영화는 암시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시민의 권리를 돌려준 군주를 존경하지만 그가 예전에 자신의 하인으로 일했던 부부에게 보낸 개가 연이어 말썽을 일으키고 더욱이 그 개가 이미 광견병에 걸려 있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돌자, 군주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된다. 어느 쪽이 진실이건 간에 <개의 날>은 새로운 삶의 시대를 연다는 것이 그처럼 때로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시작되거나 엉뚱한 곳에서 균열된다는 것을 느긋하게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삶의 연약한 형태를 조용한 소극으로 풀어 내는 무랄리 나이르 감독은 비전문 배우들의 표정과 인도 케랄라 지방의 풍광을 이야기 못지않게 전경화시키면서 날이 선 풍자와 여유 있는 관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다.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