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문화가 다른 타국에서의 이민생활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것도 가장 예민한 십대 때 편모와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야 한다면, 그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영화의 주인공인 한국계 소녀 에이미는 이런 난관 속에서 주저하고 좌절하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를 찾아보려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영어는 입에 잘 붙지 않고, 재혼을 고려하는 엄마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남자친구 트란과의 관계는 우정과 사랑의 경계에서 심하게 흔들린다. 드라마틱한 내러티브나 별다른 형식적 기교가 없는 이 작품의 미덕은, 아마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진정성에 있을 것이다. 감독 자신의 선명한 체험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이 솔직한 데뷔작에서, 전문배우가 아닌 한국계 젊은이들은 연기가 아니라 그 순간의 느낌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이들이 배회하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몸짓은 단순하며 말수는 적다. 감독은 이 젊은이들을 꽉 찬 클로즈업 위주의 화면이나 유리창에 비친 모습으로 잡아내면서, 건물들 사이로 전선들이 하늘을 황량하게 가로지르는 롱 쇼트로 대부분의 시퀀스를 마무리한다. 이런 대비는 에이미와 트란 같은 젊은이들의 운신의 폭이 아주 좁은 현실을 시각적으로 압축한다. 비슷한 도시풍경 삽입쇼트 때 반복되는 에이미의 화면 밖 대사는 그래서 더 절절하고 쓸쓸하다(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