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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프로그래머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을 다큐멘터리 속 인물들
다큐멘터리 속 인물들은 종종 우리를 불안에 빠트립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 분노와 좌절, 환희와 성취감은 스크린과 객석 간의 편안한 거리를 무너뜨리고 때때로 우리를 습격하듯 덮쳐옵니다. 픽션 캐릭터들과 달리 다큐멘터리의 인물은 우리와 같이 먹고, 자고, 숨 쉬는 진짜 인간이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선보이는 다큐멘터리에서 우리를 매혹하고, 충격에 빠트리고, 눈물짓게 하고, 시선을 잡아챌 몇 인물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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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아이들> 베흐루즈 누라니푸르

베흐루즈 누라니푸르의 <밤의 아이들>과 지안프랑코 로시의 <야상곡>은 매우 다른 색채의 작품이지만, 두 편 모두 동시대 ‘지상의 지옥’이라 불릴 만한 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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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상곡> 지안프랑코 로시

<밤의 아이들>에는 ISIS에 들어가 자살폭탄 무기로 길러진 아이들이 있고, <야상곡>에는 ISIS의 만행을 목격한 후 끔찍한 그림으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촬영했을지 궁금해지는 순간들이 적지 않은 <밤의 아이들>에 반해, 아이러니하게도 <야상곡>은 시적인 순간들로 가득합니다.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와 동떨어진 먼 세상이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 거리감이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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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타운 래퍼> 와타나푸메 라이수완차이

또 다른 톤으로, 아이들이 등장하는 <스쿨 타운 래퍼>도 빠트릴 수 없습니다. 태국 슬럼가의 키즈 래퍼들이 가난과 불평등, 억압적인 교육 체계에 대한 신랄한 생각을 즉흥적인 랩으로 쏟아낼 때, 흥겹게 들썩일 객석 광경을 상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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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1927> 윤재호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한 인물을 다룬 윤재호 감독의 <송해 1927>에는 잊기 힘든 한 장면이 있습니다. 뮤지션 지망생이었던 송해 선생님의 아들이 80년대에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영화에는 그의 아들이 카세트테이프 4개 분량의 곡을 남겼고, 둘째 딸이 오래 간직해온 오빠의 유품을 제작진에게 내놓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버지인 그도 알지 못한 사실입니다. 송해 선생님은 아들의 노래를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듣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그는…. 이미 스포일러를 해버린 것 같아 급히 매듭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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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웰즈> 오손 웰즈

오손 웰즈의 <호퍼/웰즈>와 토요시마 케이스케의 <미시마 vs. 전공투: 마지막 논쟁>은 전설적인 인물들의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두 편 모두 50년 전 촬영한 필름으로, 올해 발굴되어 처음으로 관객과 만나게 됩니다. 오손 웰즈는 <이지 라이더>로 이제 막 연출 데뷔한 데니스 호퍼가 자신을 찾아온 1970년 그날 밤, 그들의 밤샘 정담을 필름에 담아 놓았습니다. 할리우드 역사의 우상파괴적인 두 아이콘이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해할 시네필들이 있을 듯합니다. 하나 아쉬운 대목은, 영화에서 웰즈는 프레임 밖의 목소리로만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미리 귀띔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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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vs 전공투 : 마지막 논쟁> 토요시마 케이스케

<미시마 vs. 전공투: 마지막 논쟁>은 원제에서 표명되듯 극우 민족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에게 초점이 주어진 작품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아마도 우리는 다른 인물을 더 인상적으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천 명의 적(동경대 전공투 학생들) 조차 강력한 카리스마로 휘어잡는 미시마에 당당히 맞서서, 변칙의 매력을 발산하는 흥미진진한 존재. 그를 그냥 지나칠 관객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는 얼핏 우측으로 기울어질 이 영화에 이념적 균형을 잡아주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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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비밀요원> 마이테 알베르디

때론 다큐멘터리에서 픽션 영화의 주인공보다 더 극적인 인물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셀프-포트레이트 2020>의 주인공은 한때 유망한 영화감독에서 지금은 노숙자로 전락한 희비극적인 인물이며, <니얼굴>의 은혜 씨는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 마냥 명랑하고 센스 넘치는 다운증후군 작가입니다. 또 <반트럼프 투쟁>에는 헌신과 투지로 정의를 실현해가는 프랭크 카프라식 소영웅들이, <요양원 비밀요원>에는 특수임무를 맡아 요양원에 잠입하는 80대 할아버지 스파이가, <화가와 도둑>에는 자신의 그림 도둑과 묘한 관계를 이어가는 화가가 있습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이 인물들이 10월 부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와이드 앵글 프로그래머 강소원

By 와이드 앵글 프로그래머 강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