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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프로그래머

지금, 여기, 한국영화의 주목할 만한 데뷔작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비전과 뉴 커런츠 부문의 한국 장편 극영화 ‘데뷔작’들을 언급하려 합니다. 다만 개별의 상세 내용은 프로그램 노트에 적었고 지금은 각 작품에 관하여 제가 느꼈던 호감의 일부만을 짧게 나열해 보겠습니다. 이것이 관객의 호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희미한 실마리 같은 것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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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아워 미드나잇>

임정은 감독의 <아워 미드나잇>에서 저는 주인공 남녀가 거니는 밤의 산책길이 좋았습니다. 그 길들 중 어느 길들은 저도 아는 곳입니다. 그 밤에 그 길을 걷는다는 느낌도 조금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어둠 속의 빛과 그림자와 발걸음으로 어떤 마음들 그러니까 좌절과 용기와 위안 등을 애틋하게 포착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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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 <온 세상이 하얗다>

김지석 감독의 <온 세상이 하얗다>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남녀는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완강하고 능청스러운 허구가 역으로 세상에 대한 밀접하고 예리한 시각을 품고 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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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표, 서한솔 <종착역>

권민표, 서한솔 감독의 <종착역>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일관적이며 소소합니다. 혹시라도 이건 겨우 네 명의 아이들이 벌이는 유치한 소꿉놀이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 사람은 유년 시기에 우리가 맞이했던 일상 속의 그 수많은 ‘미지’의 경험과 설렘의 가치를 불행히도 이미 잊은 사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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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 <좋은 사람>

정욱 감독의 <좋은 사람>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과도 같은 영화입니다.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누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지 우린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좋은 사람>은 관객을 도덕적 판단의 수렁에 빠뜨립니다. 우린 명료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그렇게 난처한 질문을 거듭하게 됩니다. 그게 이 영화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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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태어나길 잘했어>

최진영 감독의 <태어나길 잘했어>는 무작정 귀여운 영화입니다. 사고로 일찍 부모를 잃고 친척 집의 다락방에서 살아온 주인공은 어느 밤길을 걷다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습니다. 진짜로 벼락을 맞습니다. 그러자 유년의 자신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환상이 출몰하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기 시작합니다. <태어나길 잘했어>는 동화와 코미디가 뒤섞인 채로 무한한 긍정의 화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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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유재욱 <라임 크라임>

이승환, 유재욱 감독의 <라임 크라임>은 감독들 자신의 청소년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젊은 힙합 듀오 라임 크라임의 결성과 활동에 대한 이 영화는 음악을 들을 때는 신이 나고 이야기를 따라갈 때는 스릴감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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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희 <휴가>

중년의 해고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란희 감독의 <휴가>는 엉성한 것처럼 시작하지만 조용하게 내내 관객을 붙들어 둔 다음 마침내는 주저앉힙니다. “재복이가 소시지 볶아서 올려주겠지”라는 첫 장면의 무심했던 그 대사가 마지막 장면에 문득 떠오른다면 누군가의 눈앞은 잠시 흐려질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의젓한 어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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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정 <최선의 삶>

이우정 감독의 <최선의 삶>은 10대에서 20대로 건너가는 그 격렬하고 예민한 시기의 특수한 사건과 관계를 섬세하면서도 강인하게 그려냅니다. 더없이 친했던 세 친구의 우정의 세상은 이제 과거가 될 것입니다. <최선의 삶>은 감성적이면서도 잔혹한 어떤 시정을 성취해내고 있습니다.
프로그래머로서, 이 작품들이 좋은 관객을 만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정한석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By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정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