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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무엇일까? 모 CF에선 꼬마가 닭다리를 양보하는 게 사랑이라고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 나는 괜찮지 않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상대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 사랑일까?    이원영 감독의 첫 장편영화 <검은 여름>은 어느 여름날 두 청춘이 어떻게 뜨거워지고 사랑하게 되는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지현은 대학교에서 계약직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아마도 영화학과 조교이지 않을까). 그에게는 4년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 지현이 기자재를 관리하고 빌리러 오는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따뜻하고 살가워 보이며 책임감도 있어 보인다. 본인의 영화를 준비하고 있으며,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고 시나리오에 도움 될 만한 일을 노트에 꼼꼼하게 필기하기도 한다. 그는 현재 생활을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야지, 그리고 어디로 흐를 것인지 고민해야지....’ 지현은 자신의 영화 오디션 중 건우를 만나게 되고, 그는 건우와 함께 마음 맞는 후배 2명과 같이 집을 구해 함께 살게 된다. 남자 넷이서 시작한 자취는 집안일은 ‘유도리!’를 외치며 곧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새빨간 이불에서 잠을 자던 지현이 의문의 꿈을 꾸게 되는데, 일어나 보니 몽정이었다.      지현과 건우의 이야기는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돌아오는가 하면, 다시 과거로 그리고 더 과거로 진행되어 관객들을 집중하고 생각하게 한다.지현이 건우의 꿈을 꾸고 그를 향한 혼란스러운 마음이 조심스럽게 표현이 되고, 자신과 비슷한 점이 많은 건우에게 곧 감출 수 없을 만큼 감정이 커진다. 지현이 처음 혼란을 느낄 때와는 달리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되고, 애틋해지며 돈독한 사이가 되는 과정에는 어색함이 없다.      건우와 지현이 씨리얼을 즐겨먹는데, 영화 초반에 룸메이트가 될 친구들과 학과사무실(?)에서 시켜먹은 찌개가 나오는 가정식 백반과 상반된다. 씨리얼은 간편히 말아먹을 수 있다. 언제나 어디서든. 하지만 따뜻한 찌개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있다. 씨리얼은 일찍부터 가정을 나와 독립하면서 마주하게 된 일용한 양식이며, 따뜻한 찌개는 아련한 집밥의 기억일 것이다. 둘이서 나눈 이야기 속에서 가정 혹은 아버지에 대한 빈자리를 확인했을 때, 왜 씨리얼을 오도독 오도독 먹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거나 신경을 쓰고 있을 때 꿈에서도 나오는 순간이 있다. 지현은 느끼지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건우에게 몰입하고 있었을 것이다. 꿈으로 발현된 순간 건우를 의식하게 되고, 이후 알게 된 공통점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관계를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서 이원영 감독님은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지켜야 할 것들이 부재한 요즘 시대에 희생적인 사랑을 담고 싶었다고 이야기 해주셨다. 가치를 느끼는 것을 위해서 대가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가 내 모든 것이라면, 다른 방법을 함께 생각해봐도 되지 않을까. 지현이 사랑하는 건우가 있다면, 분명 지현을 사랑하는 이들도 많으니까 말이다. ‘나’가 있고 ‘당신’이 있고 ‘우리’가 될 텐데, 지현 본인도 존중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여름 뜨거웠던 지현과 건우가 떠나고, 그 자리엔 그을린 자국만이 남았다.

2017.10.23
정지윤

 이 영화의 제목과 배경은 겨울의 막바지인 2월이다. 영화에서 두 여자 민경과 여진의 대화가 나온다. 시골마을에서 요양중인 여진이 마을 청년에게 이 작은 풀의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그는 날이 풀려 풀이 더 커야 그 이름을 알 수 있다고 했다며 민경에게 말한다. 대부분의 생명이 숨죽인 이월에 아직 민경은 다른 누구에게 불릴 이름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민경의 상황은 막막하다. 추운 겨울 밤에 지친 몸을 뉘일 편안한 공간도 없고, 의지할 만한 사람도 곁에 없다. 그리고 안정된 미래를 위해 공무원시험공부를 하고 싶지만 그마저 도둑강의를 들어야 하는 처지이다. 자연의 섭리가 추운 겨울이 끝나면 따뜻한 봄이 다가오듯이 이런 그녀도 이월을 무사히 넘기고 삼월을 맞을 수 있을까?  겨울의 길가에 핀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풀은 그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아야 그 이름을 찾을 수 있다. 민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독 민경에게는 더욱 매서운 겨울이지만 그 겨울을 어떻게든 이겨내야 그녀도 어떤 이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겨울을 홀로 이겨내기엔 민경에게는 결코 만만치 않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떳떳하지 못한 행동들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이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마을의 누군가를 빨갱이로 몰아 죽이고 그렇게 남편을 잃은 부인은 결국 미쳐 돌아다니다가 터무니없이 작은 구덩이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여진은 자신을 찾아온 민경에게 그 구덩이 곁에 쪼그려 앉아 들려준다. 자신의 생존과 올바른 행동 사이에서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독하게 살아남아 겨울을 넘기고 봄을 맞아 이름을 가지려는 그녀를 보면 분명 비난 받을 일을 저질렀음에도 관객으로 하여금 질타만을 던지지는 못하게 만든다.  그녀는 봄을 맞아 이름을 가지고 더 나아가 자신의 씨앗을 맺어 봄바람에 그 씨앗을 세상에 흩뿌릴 수 있게 될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그녀의 바람을 담은 듯 보인다.

2017.10.22
변숙희

박화영은 '엄마'라는 호칭에  집착하는 만큼 나름대로 그 이름에 걸맞는 존재가 되려 노력한다. 아이들에게 욕과 잔소리를 퍼부으면서도 끼니를 대령하고 한발앞서 필요한 것을 챙겨주며 역할놀이에 만족하는 모습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혼자 있을 때는 집 정리, 설거지, 빨래, 욕실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 없을 때 엄마는 뭐하냐'는 미정의 질문에는 "X나 기다리지, XX년아." 라고 대답한다. "원래 이런건 엄마가 커버 치는 거"라든가, "야, 넌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는 말로 자신의 효용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화영에게 기생하는 아이들은 화영의 수고를 알아주지도, 화영을 진짜 엄마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화영에게 많이 쓰는 말은 오버하지 말라는 은어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의 엄마에게는 '너', 'XX년' 하며 온갖 욕으로 호칭을 대신한다.과거의 화영 엄마는 그저 전화 너머, 인터폰 건너편의 존재다. 화영이 폭언을 퍼붓는 동안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고, 화영이 칼을 들고 찾아와 난동 부리다 경찰에 끌려갈 때조차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는다. 정서적으로는 화영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보인다.  화영은 아직 미성년에 경제력이 없으니 친구들과의 관계를 붙들려면 엄마의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담임교사나 미정 엄마가 '니네 엄마랑 통화 좀 해야겠다'고 하면 이상하게 겁에 질린다. 어른과 어른의 대화는 화영에게서 돈과 인간관계 모두를 앗아갈 수 있는 것이다. 화영은 엄마에게 온갖 쌍욕을 쏟아내며 분노를 표출하다, 지친 듯한 엄마의 입금 문자에 쾌재를 부른다. 엄마라고 불러주는 친구들이 있는 한, 화영에게 엄마의 존재는 돈줄에 불과한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화영으로서는 그나마 엄마에게 기대할 수 있는 애정이 그 돈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화영은 미정이 화영 엄마에 대해 묻자 '딱 나 같은 엄마'라고 의외의 대답을 한다. 화영과 화영 엄마는 같은 옆모습으로 같은 액상 감기약을 마시는 모습에서 겹쳐지지만, 빈 방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감기약과 소주를 번갈아 들이키는 화영과 달리 화영 엄마는 화영을 떼어내 빈 방에 남기고 떠난다. 과거 기세등등하던 화영이 이때만큼은 힘없이 엄마를 불러선 "엄마도 꼭 '엄마 같은 엄마' 만났으면 좋겠다"며 책망하는 말도 한다. 화영은 자신의 어떤 부분에서 엄마와의 공통점을 보는 것일까. 감독에 의하면 화영의 엄마는 화영에게 가장 큰 '상실'이자,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부정적인 어른의 예시였다고 한다. 화영이 엄마에게 진정 바란 것은 돈이 아니었겠지만, 화영 엄마는 끝내 돈과 집으로써 모녀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다. 비단 엄마 뿐만이 아니라 교사, 경찰, 사진작가, 성매수남, 술집 사장 등 여러 어른들이 등장하지만 긍정적인 어른의 형상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영화 속 배경도, 화영의 집을 비롯해 모텔, 노래방, 술집, 주차장의 (남의)차 안 등 실내지만 생활감이나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다. 그나마 미정은 깔끔하고 정돈된 스튜디오와 분장실에 속하지만 이 역시 그저 잠시 머무르는 곳이자 미정이 던져진 정글이기도 하다. 진짜 엄마와 사는 미정의 집은 닫힌 문과 소리로만 등장하여 화영과 다른 아이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어떤 '환경'이 이 괴물 같은 아이들을 만들어냈음을 짐작하게 한다. 통제를 벗어난 아이들은 어른들이 본을 보인 대로 서로 뜯어먹고, 상대를 밟고 올라서고, 이해득실에 따라 관계를 만든다. 제목과 영화는 박화영을 집중 조명하지만, 사실 화영을 조롱하고 깔아뭉개는 다른 아이들도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다. 과거와 현재가 부채살 형식으로 배치된 이 영화에서 주로 쓰인 (과거의) 4:3 비율의 의도는 명백해 보인다. 이 비율은 어쩌면 화영의 단칸방 모양과도 비슷해보인다. 담배 연기로 가득한 공간과 정신 승리에 매달리는 화영의 답답하고 처절한 모습이 더 갑갑하고 숨막히게 다가온다. 감독에 의하면 4:3 화면이 인물을 가장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비율이라는 생각이 있었고, <사울의 아들>에서 인물을 집요하게 좇는 연출을 인상깊게 보고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카메라 역시 화영을 둘러싼 인물 중 누군가의 시선인 것처럼, 카메라를 하나의 캐릭터로 가정하고 촬영했다고 한다.   이번에야말로 엄마에게 버림 받은 뒤, 큰맘 먹고 미정을 만난 화영은 끝내 미정이 불러주던 '엄마'라는 이름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해야 한다고 하던가. 하지만 그것도 그 상처가 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서 왔을 때의 이야기일 것이다. 시종 침울하고 무력한 표정으로 과거를 바라보던 화영의 얼굴은 영화의 마지막에 다시 '엄마'를 자처하기 시작하며 예의 껄껄대는 웃음으로 가득 채워진다. 지금은 성인이 되어 직접 돈을 버는 화영이니, 오갈 곳 없는 가출청소년들에게 조금은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보고 그런 희망을 떠올리기는 힘들다. 이환 감독은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박화영을 '연민하기 어려운 전대미문의 캐릭터'로 만들고자 했다는데, 그의 말대로 화영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정도로 고장 났는지 알기 힘든 강렬한 캐릭터다. 화영이 이토록 관계와 관심에 목말라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화영의 엄마에게 있다고 짐작되지만 이미 따로 나와 살고 있는 '과거'의 과거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보니 둘의 관계는 공백으로 남는다. 화영 역의 김가희 배우는 '화영을 그냥 느껴 버렸기에' 굳이 여백을 채우려 뭔가 창조하려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문득 화영 엄마를 연기한 분의 생각도 궁금해진다.)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집으로 가면서도 속이 좀 울렁거렸다. 배우들이 뿜어낸 에너지가 그만큼 강렬했던지, 고통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은 채 주변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캐릭터 하나하나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작품 안에서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도 많이 남고, 그런 면에서 <박화영>은 정교하거나 발견이 있는 영화는 아닌 듯하지만 어쩌면 그런 명확하지 않은 답답함까지 오늘 이 나라의 민낯을 닮아 더 마음을 깊게 할퀴는지도 모른다. 이름 석자로 된 제목이 알려주듯 이 영화는 캐릭터의 힘으로 가득하다. 솔직히 손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화영에게 연민이 들었던 것은 화영을 비롯한 등장인물 모두 배우가 맡은 캐릭터가 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 결과라고 느꼈다.  

2017.10.22
염보라

오래 전 홀로 고향을 떠났던 남자가 새로운 가족들과 돌아왔다.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인척 그리고 지인들과 재회하며 기쁜 시간을 나눌 법하지만 오히려 자신을 알아보는 친구마저 반기지 않은 눈치다. 그러고 보니 입국장에 들어설 때부터 그는 몹시 조심스럽고 경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과연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 것일까?  영화 <헤이는>은 한 남자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숨겨진 진실에 접근해나가는 영화다.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시간의 교차를 통해 보는 이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에서 '가족'과 '믿음'이란 것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어머니가 병상에 눕자 종교의 힘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아버지와 병원에서 치료 받아야 한다는 이복 형과의 갈등, 그리고 그런 가족을 위했던 주인공. 이들은 각자의 믿음과 신념에 따라 행동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다. 나는 <헤이는>을 보며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누구 하나 반겨주지 않는 고향에서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지키기 위해 분노하는 주인공을 보면 가족의 연대를 중시하는 것 같지만, 정작 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예전 함께 했던 가족이 아닌 외국인 노동자인 친구뿐이다. 결국 고향을 떠나기 이전의 것들과 멀어지고 그 이후의 것들과 가까이 할 수 밖에 없는 이 남자의 선택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영화 상영 이후 이루어진 GV에서 최용석 감독은 <헤이는>에서 공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영화상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그 공간이 갖고 있는 사연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에선 항구의 모습이 크게 다가온다. 주인공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떠도는 모습과 항구에 부유한 선박들의 모습은 그 처지가 닮아 보인다. 그리고 선박 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삶을 바로잡으려는 그의 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글을 통해 전달하는 <헤이는>이 다소 어렵고 무겁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양한 관계 속에서 선택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갖고있는 고민은 <헤이는>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가 던지는 사유를 통해 자신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2017.10.22
김정현

 최용석의 영화에서 과거는 매우 중요한 촉발제다. 인물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정도로 삶을 지배하곤 한다. 특정한 사건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이상할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유독 최용석의 인물들에게 그 영향이라는 것은 너무나 크고 또 지속적이어서 매우 도드라진다. 그것을 상실이라 부른다면 그들은 끝날 것 같지 않은, 기나긴 애도 중에 있는 것만 같다. 밝히건대 그의 영화 전편을 보지는 못했으므로 예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책임하고 성급한 발언에 용서를 구해야겠다. 적어도 내가 본 그의 영화 두어 편-<제외될 수 없는>, <다른 밤 다른 목소리>, 그리고 이 영화까지 쳐서 세 편인 셈이다-에선 그랬다. 영화 속 인물들은 상처의 영향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상을 살고 있어도 고통 받고 있어서 현재의 시간을 산다고 할 수 없고, 그렇지 않으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행동양상으로 나타나고는 했다. 현재의 시공간 안에 과거의 사람들을 등장시켜 기억을 반추하는 장면은 그래서 지극히 당연하게 보인다.  또한 이렇게 쉽게 말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그들은 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전 작에서 주인공은 화교였다. 그들은 한국인이기도 중국인이도 하고, 어쩌면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니다, 그는 머물지 못하고 이 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업으로 삼은 선원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은 입양아다. 너의 진짜 엄마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진심으로 따르고 좋아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형이 저를 가족이라 여기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주인공이 형의 죄를 뒤집어쓰는 것은 그를 마냥 좋아해서라는 이유 하나 뿐이었을까. 형을 이해한다는 어린 석의 말은, 이해하고 싶다는 뜻이다. 가족이 아니니까 되고 싶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친형제 사이에도 무리할 일을 감행하게 된다. 복역을 마치고도 석은 당당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참을 객지에 떠돌다가(여행사에서 가이드 일을 했다) 가족이 생기면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보다 외국인들과 가깝게 지내고, 정착하는 과정에서도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 아내 로안 역시 베트남에서 만났다. 그의 얼굴은 한국인이지만 베트남으로 귀화했고 “한국에 대해 잊어버린 것이 많”은 사람이다. 아이 역시 민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갖고 우리말을 쓰지만 그의 용모 절반은 외국인이다.  그런가하면 이번에도 석이다. <이방인들>에서도 그랬던 모양이고, <다른 밤 다른 목소리>에서도 그랬듯이. 이번엔 형제다. 그리고 최용석의 영화에서 석은 노골적으로 감독 본인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는 모든 게 그대로인 것 같아.”  “다 달라졌어, 사람도 모두 다.” “...경찰서에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변한 게 없구나.”    형제의 대화가 최용석의, 그 자신의 영화에 대한 목소리처럼 들린다고 말하면 비약이 될까. 이번에도 ‘그대로’, 특정 주제에 천착하는 것은 최용석의 영화에 있어 그 존재의 증명에 다름 아니다. (이번에는 짧아진 편이지만 다른 영화들과 비교할 때 여전히) 긴 호흡, 인물과 사건을 전시하려 들지 않는 예의 같은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달라졌’다는 것도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이전엔 없기도 하고 드물기도 했던 플래시백, 핸드헬드, 트래킹, 클로즈업, 설명적 쇼트들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나에게 이번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을 잡는 사람들이었다. 영화 초반 경찰서에 앉아있는 어린 석은 연욱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택시 안에서, 편치 않아 보이는 어른 석을 보고 아내는 손을 잡아준다. 그러면 그는 다른 손으로 아내의 손을 겹쳐 잡는다. 후반부에 다다라 형과 교회에서 만나고 돌아온 석이 잠든 가족의 이불을 파고들 때, 아내는 잠결에도 그의 팔을 더듬어 잡는다. 억지로라도, 혹은 힘겹게, 외면했던 것들을 조금씩 마주보는 석의 의지, 노력, 용기 중에 그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을 힘의 원천을 엿본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같은 장면들에서, 석은 과거에 종속되어 현실을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최용석의 이전 인물들과는 다르게 보인다. 그는 현실에 마음 붙이고 살아가려 하고, 녹록치는 않더라도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뿐인가. 마지막 장면에 가서 한 때 자신의 세계 전부였던 형의 얼굴을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볼 때, 석의 얼굴은 그 세계에 대한 공식적인 작별을 고하는 것 같다. 거기에 반응하는 형의 굳은 얼굴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기가 어렵다. 남들은 "알 것 같"다는 석의 마음을 여전히 모르는 우둔함인지, 외면하는 마음의 발로인지, 그가 동생에게 진 빚과 그가 선 자리에 대한 부끄러움인지, 혹은 그 외 다른 것이거나, 그 모든 것인지, 아무 것도 아닌지. 마감을 훌쩍 넘겼건만 별처럼 많아지는 생각들을 헤아리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2017.10.22
김지연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이 하나만은 바뀌지 않을 거야. 내가 공주라면 누더기나 넝마를 입었어도 속마음은 공주처럼 될 수 있어. 금빛 두른 옷을 입었다면 공주가 되는 게 쉬웠겠지만, 아무도 몰라줄 때에도 쭉 공주가 되는 게 훨씬 대단한 거야. 마리 앙투아네트가 바로 그랬어. 그녀는 감옥에 갇히고 왕비 자리에서 쫓겨 나고선 검정 옷만 입고 머리는 하얗게 세어버리고 카페의 과부라 불리며 모욕을 받았어. 그래도 그 때가 화려한 옷을 입고 모든 것이 웅장한 곳에 있을 때보다 그녀가 훨씬 더 왕비 같았어. 나는 그때 마리 앙투아네트가 좋아. 그 성난 사람들은 그녀를 겁줄 수 없었어. 그녀는 그들보다 더 강했어. 심지어 그들이 그녀의 목을 쳤을 때도 말이야." –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소공녀 A little Princess> 중   전고운 감독의 첫 장편작 <소공녀>의 제목은 자연스레 동명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고난을 겪는 여성 주인공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태도에 주목하게 하는 내용 역시 비슷하다. 그렇다면 과연, 현대판 소공녀의 삶은 100여년 전의 소공녀의 삶과 어떻게 다를까? 또 그녀의 삶은 2017년의 관객으로 부터 얼마 만큼 공감받을 수 있을까? 두 작품은 주인공이 고난에 빠지게 되는 원인 설정에서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소설 <소공녀>의 주인공 사라 크루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순식간에 빈털털이 고아가 되었던 것과 달리,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인 미소는 스스로 집을 버리기로 선택한다. 그녀가 집을 버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담배와 위스키 중 무엇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고아가 된 세라는 물욕이 심한 민친 교장의 계략으로 인해 다락방 하녀 신세가 되지만 미소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가사 도우미'로서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바로 두 인물이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이겨내는 방식이다. 사라의 원동력은 상상력 이자 일종의 현실 부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공주라고 상상하며 암울한 현실을 밝은 에너지로 뒤덮곤 했다. 이와 달리 미소는 자신이 자처한 힘겨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집을 떠난 그녀는 캐리어를 끌고 과거에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을 찾아다닌다. 물론 그 과정에서 미소는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미소의 친구들은 그녀의 도움을 거절하거나, 그녀를 더욱 곤경에 빠뜨리거나, 모진 말로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곤 하기 때문이다. 미소의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집을 버리게 된 계기인 담뱃값 인상에 이어 위스키 가격마저 오른다. 심지어 미소는 남자친구로부터 미래를 위해 2년간 한국을 떠나겠다는 통보를 받는다. 하지만 그 어떤 일이 닥쳐도 그녀는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려하지 않는다. 2017년의 소공녀에게 닥친 수많은 고난들은 결코 소설처럼 한번에 수습되지 않는다. 미소의 삶에는 여전히 괜찮은 척 하는 상상이나 가정 따위가 있을 수 없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삶에 적응하는 그녀의 태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어느 순간 상상만 하던 공주님이 된 사라의 이야기 <A little princess>와 달리, 사회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작디 작은 미생물과 같은 미소의 이야기 <Microhabitat> 중 후자가 더욱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리고 염치 없다며 욕을 듣곤 하더라도, 더 이상 적당한 서식지를 찾지 못해 길가에 작은 텐트를 치더라도 끝까지 자신 다운 미소의 이야기가 우리 시대의 '소공녀'에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2017.10.22
함윤정

민경(조민경)의 과거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부분들이 생략된 것일까 궁금해하다 자세히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을 떠올린다. 실은 우리는 그 누구의 과거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 자격이 없다. 그래서 <이월>이 타인에 대해 지켜야하는 예의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우리가 타인에 대하여 지녀야 할 거리를 영화 속 인물들에게 철저하게 지킨다. 민경이 친구 여진의 상처를 말로 후벼파는 모습, 쉽게 사람들을 외면하는 모습은 꽤 잔인하다. 도둑질, 성판매, 거짓말을 망설임 없이 하는 민경의 모습은 분명 등 일반적으로 윤리적이라고 여길 수 없는 것들이다. 대체로 이런 여성이 영화에 등장한다면 그녀의 '망가짐'에 집중하곤 했다. 왜 이렇게 망가졌고 어느 정도 심하게 망가져있는지, 과연 그녀가 구원받을 수 있을지. 그렇지만 <이월>은 다른 태도를 취한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민경을 기괴하게 그리지 않는다. 진규()에게 돈을 받고 섹스를 하지만, 섹스 이후 민경이 속옷만 입은 채로 '아 추워 추워'를 연발하며 돈통에 돈을 넣는 장면은 정말 인상깊다. 그간 한국 영화에서 속옷만 입은 20대 여성의 모습을, 심지어 섹스 직후의 젊고 예쁜 여성을 이토록 성적이지 않게 그려낸 작품이 있었을까. 영화는 민경의 과거나 결핍보다, 이 괴로운 현실을  살아내는 생존이라는 현재에 초점을 맞춘다. 생존을 위해 타인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듯, 민경에겐 그저 생존 방략인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는 것, 주변인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말이다. 감독이 확보한 거리 덕분에, 심리학적 결정론을 들이밀며 민경의 과거나 결핍에 대해 집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저 응시하고 작게 응원할 수 있었다. 그녀가 보내는 2월이 금방 지나가기를. 

2017.10.22
최다희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살아가던 준호(이효제). 어느 날 엄마를 찾아온 어떤 여자와 함께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초등학생인 배다른 동생(임태풍)이 혼자 살게 된 것을 딱하게 여긴 배다른 동생의 아버지(허준석)는 동생을 자신의 집에 데려간다. 그리고 동생의 성화에 동생의 아버지는 준호를 자신의 집에 데려오고 준호는 동생의 아버지의 눈 밖에 나면 쫓겨날 수도 있다는 절박한 생각에 이 집에 남으려고 애쓴다.주인공인 준호가 처한 처지는 얄궂은 우연과 상황들로 점철돼 있다. 항상 보험일로 바쁜 엄마는 준호와 동생 모두에게 제대로 신경쓸 겨를이 없다. 그리고 그 엄마마저 우연인지, 배다른 동생의 아버지 부인과 교통사고를 당한다.배다른 동생의 아버지는 준호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다. 그에게 준호는 어떻게 보면 껄끄럽고 또 없었으면 하는 존재다. 그런 그가 준호에게 따스한 연민을 느끼고 미소를 보이는 과정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 믿음 이런 감정들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 보게 된다. 특히 영화의 종반부에 준호가 '같이 살고 싶어요'라며 마침내 절규하듯 흘리는 눈물은 소박한 보통의 가정을 꿈꾸는 한 소년의 절박한 절규다.우리나라도 근래 들어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꼭 피가 섞여야 가족일까. 애정 어린 시선과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게 가족이고, 그들이 함께 사는 집이 가정이 아닐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지, 가정이란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2017.10.21
강신우

우리의 홀로서기시민평론단 홍가은  말 수가 적고 침착한, 그토록 어른스럽던 준호가 결국에는 울부짖는다. 그리고 소리친다. “같이 살고싶다”고. <홈>은 준호가 단란한 가족과 안락한 집을 얻기 위한 격렬한 투쟁을 그린다. 엄마와 함께일 때도 준호는 어린 동생을 혼자서 돌보고, 엄마와 동생을 위한 밥상을 차린다. 중학생 남자아이가 해내기엔 쉽지 않은 일이다. 불의의 사고가 엄마를 앗아간 후, 준호는 철저한 고독에 남겨진다. 그 고독은 또 다시 동생 성호와 원재, 지영과 함께 하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을 품게한다. 준호는 다시 열심히 집안일을 하고, 동생들을 돌보며 원재의 일손을 돕기까지 한다. 열 넷, 열 다섯의 소년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그것이 더욱 가혹하고 가엾게 보이는 이유는 준호가 너무나도 간절하고, 치열하기 때문이다.   준호가 치열했던 만큼, 영화의 어떤 인물도 준호처럼 부단한 노력을 하는 이는 없었다. 나는 그래서 <홈>을 가족드라마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은 온전히 준호만의 고독한 홀로서기이며, 성장드라마다. 준호는 가족과 집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전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던 불량한 친구들에게 거절을 하기도 하고,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우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마음껏 달려보고 싶었던 축구장에서 힘껏 뛰고 차고 싸운다. 누군지 모를 아줌마가 엄마에게 창피를 줄때도 애써 외면하고 참으며 견뎌내면 준호는 결국에 세상과 싸우는 법을 배웠다.     <홈>은 뚜렷한 문제제기를 하지도,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준호의 엄마가 불륜을 저지른 것이 그나마 다행인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준호의 홀로서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 모두 반드시 혼자서, 스스로의 두발로 똑바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하지만 카메라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오롯이 준호를 선명하게 담아내는 카메라는 ‘준호의 가족’이 아니라 ‘준호’를 원 톱 주인공으로 지목한다. 어차피 원재의 아내는 깨어날 것이고, 준호는 혼자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2017.10.21
홍가은

 <소공녀>의 미소는 담뱃값과 집세가 오르자 담배가 아닌 집을 버린다. 그녀의 선택에 대한 기준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에서 상당히 벗어난다. 그녀의 선택에는 계산이 없다. 좋아하는 것, 그녀는 그것을 버리지 않을 뿐이다. 그 선택이 더 큰 결핍이 되더라도 미소는 선택했고 그것에 대해 불편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미소에게 두려운 건 좋아하는 것들을 잃는 것이다. 담뱃값 대신 집세에 두 줄을 긋던 미소의 황당한 선택이 이야기 안에서 어떤 설득력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재밌는 건 그다음 미소의 행보다. 그녀는 자신의 결핍을 감추려 하지 않고 주눅 들지도 않는다. 당연하다는 듯 주변의 사람들을 한 사람씩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들은 한때 미소와 떨어질 수 없었던 하나로 묶인 밴드부원들이다. 미소보다 가진 것은 상대적으로 많지만, 여전한 결핍이 존재한다. 그들의 선택이 결핍을 채우기 위한 ‘필요’가 우선순위였어도 말이다. <소공녀>안에서 미소의 친구들은 당연하게도 현실적인 일부 우리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한때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치고 춤을 추며 주어진 것들을 누리던 그들이 ‘집’처럼 필요한 것을 선택하며 그 안에 갇힌 모습이 되었을 때 그 모습이 낯설지 않다. '좋아하는 것' 대신 '필요한 것'을 선택하고 그럼에도 또다른 결핍을 가져 본 경험이 있다면 말이다.무겁지도 비장하게도 연출하지 않은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와 독특한 연출들이 <소공녀>의 불행한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며 극 중 재미까지 더한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리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며 점점 사회에서 밀려나 작은 점이 될 때까지 미소를 그려내는 방식도 비참하거나 조롱의 시선이 아니다. 영화는 그저 묵묵하다. ‘미소는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다’라는 분명한 명제를 영화는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후반부 미소가 마지막까지 위스키 한 잔을 즐기는 모습에서 그녀의 선택에 대한 의문이 사라졌다.  <소공녀>의 마지막 쇼트를 보며 한동안 스크린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주저하지 않고 여전히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그녀의 그림자가 아직 있어서다. 좋아하는 것의 선택함이 도태될 수도 있는 스크린 건너편에 살고 있어서다. 

2017.10.21
박미리내

 퇴직과 동시에 여자친구의 배신이 어느 날 갑자기 경유를 길 위로 내모는 겨울 손님이 된다. 호랑이가 있어도 경유는 갈 곳이 없다. 경유는 호랑이가 탈출한 길 위에서 방황한다. 가뜩이나 눈뜨고 코 베이는 세상에 호랑이까지 탈출했지만, 그는 머물 곳이 없다. 경유는 경유한다. 그나마 실낱처럼 잡은 경유의 직업은 대리운전이다. 재밌는 부분이다. 많은 길을 달리지만,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향하는 길이 아니다. 부초처럼 떠돈다. 경유는 목표 지점을 잃었다. 유정은 길 잃은 경유에게 두 번 째 겨울 손님이 되어 나타난다. 작은 슈트케이스에 양복 한 벌과 티셔츠 몇 장, 오래된 ‘노인과 바다’를 넣어 다니며 친구집을 전전하던 중 만난 옛 연인이다. 유정은 경유와 달리 적당히 가졌고 어느 길이든 달릴 수 있다. 거기다 경유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룬 캐릭터이기도 하다. 유정은 경유에게 호의를 베풀고 다시 뭔가를 시작하려 한다. 경유의 문자를 기다릴 때,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알려줄 때 등 유정의 표정과 몸짓이 매혹적이다. 둘이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나 보다, 유정의 모습이 예쁘게 보였다. 경유는 원래 글을 쓰던 사람이다. 그는 절필했다.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창작이 형편없다고 생각한다. 창작자에게 재능이 없음의 인지만큼 비참하고 주눅 드는 것이 없다. 유정의 다시 글을 써보라는 권유에도 경유는 다시 한번 확실한 절필의 의지를 보인다. 그는 겁에 질려있다. 그는 유정의 집이 주는 안락함이 더 좋다.그런 그가 유정의 집을 나온다. 다시 호랑이가 돌아다니는 두려운 길 위의 사람이 된다. 유정이 제안한 부탁 때문이다. 그 제안은 경유가 유정에게 느낀 모든 것을 뒤엎는다. 그는 유정의 부탁을 듣느니 차라리 길 위에서 호랑이와 마주치기로 한다. 호랑이의 포효는 살아있는 것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온몸을 마비시키는 것. 현실에서 우리를 가로막는 호랑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탈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아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경유가 다시 펜을 잡는 순간 그가 마주하는 두려움의 근원은 어쩌면 바로 경유, 또는 우리 스스로일지도 모른다.

2017.10.21
박미리내

 영화의 시작, 민경은 좁은 벽돌 위에서 위태롭게 서있다. 유심히 바라보는 두 눈은 창 안의 쓰러진 여자에 향한다. 검은 밤과 철창. 철창 안에서 본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이 철창 안에 갇힌 초식동물의 모습이다.  민경의 상황은 다르덴 형제 영화 <로제타>의 로제타와 겹쳐있다. 일하는 곳에는 돈을 훔쳐 해고 당하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가족인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가 민경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민경은 추운 겨울을 견뎌내기 위해서 아저씨와 성매매를 하고 돈을 훔치며 친구 집을 전전한다. 삶을 살아가려는 민경은 온몸으로 겨울을 이겨낸다.   <이월>은 민경의 추운 2월에 집중한다. 공무원 시험을 앞둔 민경은 시작과 끝의 교차점인 2월의 시기에 맞아떨어진다. 30일도 채우지 못하는 2월의 부족함도 민경과 같다. 영화 제목이 2월인 이유는 민경이 2월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인생에서 혹독한 2월은 지나가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성매매를 하던 아저씨 집에 들어가서 조금은 편안해진 삶을 살아가던 민경이 추운 컨테이너 박스로 들어갈 때 그녀의 삶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96 Normal 0 10 pt 0 2 false false false EN-US KO X-NONE /* Style Definitions */ table.MsoNormalTable {mso-style-name:"표준 표"; mso-tstyle-rowband-size:0; mso-tstyle-colband-size:0; mso-style-noshow:yes; mso-style-priority:99; mso-style-parent:""; mso-padding-alt:0cm 5.4pt 0cm 5.4pt; mso-para-margin:0cm; mso-para-margin-bottom:.0001pt; mso-pagination:widow-orphan; font-size:12.0pt; font-family:"맑은 고딕",sans-serif; mso-ascii-font-family:"맑은 고딕"; mso-ascii-theme-font:minor-latin; mso-fareast-font-family:"맑은 고딕"; mso-fareast-theme-font:minor-fareast; mso-hansi-font-family:"맑은 고딕"; mso-hansi-theme-font:minor-latin; mso-font-kerning:1.0pt;}  영화의 마지막 혹독한 삶의 공간인 컨테이너 박스는 공중으로 떠오른다. 높게 떠오른 민경은 세상을 바라본다. 좁은 벽돌 위에 위태롭게 위를 들여다 보던 민경은 떠오른 컨테이너 박스에서만 혹독한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현실에 붙어있는 발은 언제나 위태롭기만 하다.

2017.10.21
정다은

 “남녀가 섹스를 나눈다”라는 의미를 가진 표현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만리장성을 쌓다, 역사를 세우다, 잔다, 섹스! 등 다양한 말들이 있다. 좋아하는 남자와의 하룻밤을 보낸다는 말을 “밤치기”라고 표현했다는 정가영 감독은 가영의 맹렬한 치기(hit)에 집중한다.  <밤치기>의 가영(정가영)은 시나리오 자료조사 핑계로 좋아하던 오빠(박종환)에게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 성경험과 취향을 집요하게 질문하던 가영은 오빠에게 급기야 자신과의 하룻밤을 제안한다. 저녁 식사를 시작으로 룸카페를 지나 노래방까지 가영과 오빠의 하룻밤은 길다. 가영은 하룻밤을 쳐내기 위해 구애의 밤을 보낸다.  96 Normal 0 10 pt 0 2 false false false EN-US KO X-NONE /* Style Definitions */ table.MsoNormalTable {mso-style-name:"표준 표"; mso-tstyle-rowband-size:0; mso-tstyle-colband-size:0; mso-style-noshow:yes; mso-style-priority:99; mso-style-parent:""; mso-padding-alt:0cm 5.4pt 0cm 5.4pt; mso-para-margin:0cm; mso-para-margin-bottom:.0001pt; mso-pagination:widow-orphan; font-size:12.0pt; font-family:"맑은 고딕",sans-serif; mso-ascii-font-family:"맑은 고딕"; mso-ascii-theme-font:minor-latin; mso-fareast-font-family:"맑은 고딕"; mso-fareast-theme-font:minor-fareast; mso-hansi-font-family:"맑은 고딕"; mso-hansi-theme-font:minor-latin; mso-font-kerning:1.0pt;}  정가영 감독은 늘 남녀관계에 주목한다. 전작인 <비치 온더 비치>는 전남친 집에 들어가 땡깡으로 섹스를 시도하는 가영이었다면 신작 <밤치기>는 부지런한 자기 어필으로 좋아하는 남자와의 섹스를 시도하는 가영이다. 가영의 구애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가영은 성장했고 정가영 감독은 더욱 더 완벽해졌다.

2017.10.21
정다은

 담배와 일을 마치고 마시는 위스키를 인생의 행복으로 여기는 미소는 가사도우미이다. 하지만 새해가 되자 담배값이 인상되고 미소는 담배를 사기 위해 오랫동안 머물었던 집에서 나와 추억을 함께했던 옛 친구를 찾아 나선다.   영화 <소공녀> 속 미소는 힘든 삶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점에서 소설 <소공녀>의 주인공 세라와 겹쳐있다. 미소는 위스키와 담배로 행복을 지키면서 많은 돈은 벌 수 없지만 자신이 가장 잘하고 열심히 할 수 있는 가사도우미를 하며 살아간다. 전고은 감독은 세상이 끝없는 시련을 주어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맞서는 미소를 비추며 품위 있는 삶을 보여준다. 집과 약을 포기하고 머리가 다 세어버린 채 텐트에서 밤을 보내는 미소. 미소 위에 비행기가 나타난다. 소공녀를 도와주려는 신사의 도착일까.

2017.10.21
정다은

<소공녀>: 낙이 있다는 것세상 살면서 낙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걸까? 아무리 다 기진 사람이라도 뭔가 즐길 거리가 없으면 무료하고 아주 허할 거 같다. 여주인공 미소는 아주 심플하고 명확한 기호가 있다. 담배, 위스키, 남친. 단순하다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요새 사람들은 너무 쉽게 지루해하고 자꾸 새로운 것을 찾고 또 새로운 것이 많지만 공허하다. 그런데 미소는 그 3개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돈을 저축하는 것보다 그게 먼저다. 카메라는 그런 미소를 한없이 사랑스럽게 보여준다. 한심하다는 듯 답답하다는 듯 쳐다보지 않는다. 오히려 다가진 여자가 한심하게 보이게 만드는 게 이 영화다. 우리는 모두가 가는 길로 편승해야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살다보니 내가 잘살고 있는건지 행복한지도 깜박할 때가 많다. 이 영화를 보면 그 깜박했던 사실을 순간 인식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정말 유쾌하다.위트있는 대사들도 영화를 살리는데 한 몫 한다. 영화 초반부 미소의 방에서 "우리 한 지 너무 오래된 거 아니야? 할까?" 그리고 두 남녀는 5겹쯤 되는 옷을 열심히 계속 벗는데 벗어도 벗어도 계속 옷이 남아있는 것이 '언제 다 벗어?' 하는 생각에웃기면서도 씁쓸하다. 그렇게 힘들게 옷을 벗었지만 살만 닿아도 "앗차가워"라는 소리가 나오는 환경 그리고 남자친구의 한마디 "안되겠지?... 봄에하자." 그 대사는 폭소를 일으키지만 세상에 사랑을 3달이나 미뤄야 하다니!라는 생각이 들게도 만든다. 어쩌면 두달일지도 모르지만. 하하이 후 방세도 올려달라고하고 담배값도 오르고 위스키 값도 오르고 하지만 미소의 벌이는 전혀 오르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미소는 결단을 내린다. 방을 빼는 것인데 정말 대단한 인물인 것 같다. 담배랑 위스키를 계속 하기 위해서 집을 포기하다니! 이 정도로 강단있는 여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어떤 상황에서도 누가 뭐라고 하든 간에 미소는 자신다움을 버리지 않는다. 아무리 집이 없고 가난해도 휩쓸리지 않고 자기 주장을 한다.집을 잃고 학창시절 밴드를 함께 했던 멤버들의 집을 전전하게 되는 이 영화는 미소와 삶에 편입하겨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부조화를 보여준다. 다들 미소보다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만 어디 하나씩 모자란다. 이 부조화 속에서 또 우리는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사실 용감한 건 미소인 것 같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계속 산다는 것 말이다. 다른 독립영화와는 다른 지점이고 보통 현실에서도 힘든 태도이다. 그래서 어쩌면 동화와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동화 속 공주 마인드라고나 할까? 여유있는 태도와 욕심, 질투가 없는 마음상태. 근데 동화와 다른 점은 미소의 상황이 공주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비젼 부문에도 떠도는 존재들의 공허함과 좌절을 보여주던 영화들이 여럿있었는데 이 중 영화<소공녀>의 입장설정은 독보적이다.광화문시네마의 위트있는 느낌과 전고운 감독의 각본이 잘 어울려 엄청난 시너지가 나오는 영화인 것 같다.

2017.10.21
하지우

  중국에서는 영화에서 감독의 역할을 연출이 아니라 도연(導演)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연기를 이끌어 내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찬 감독의 첫 장편영화 <박화영>을 본 첫 소감은 젊은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훌륭하다는 점이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가출 청소년 팸을 중심으로 거친 10대들의 생활과 미묘한 감정의 부딪힘을 과감 없이 드러내야하는 쉽지 않은 역할들인데도 선배 연기자이기도 한 감독과의 교감의 결과인 듯 주연과 조연을 막론하고 각각의 캐릭터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영화 상영 후에는 여러 명의 출연 배우들이 감독과 함께 GV에 참석하여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준비 과정에서 함께 생활하다시피 하며 캐릭터를 고민하고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중요시 하였다고 한다. 이 배우들은 관객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도 각각의 신에서 자기 캐릭터의 성격을 명민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영화는 주인공 박화영을 중심으로 그를 엄마라 부르며 이용하는 동갑내기 은미정과 이 청소년 집단의 대장격인 영재 세 명의 주된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욕설이 대부분인 대화와 담배에 찌든 생활공간, 라면이 거의 전부이다시피 한 식사 그리고 무분별한 성과 거친 폭력 등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상상의 수준을 벗어날 정도로 험악하고 위태롭다. 이 정도일 리는 없다며 이를 부인하고 싶은 관객의 심정과는 별도로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 역시 현실로 인정하고 직면해야 함을 영화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어떤 지점에서는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폭력 장면의 필연성에 의문이 생기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폭력의 주된 피해자였던 주인공 화영이 세진을 폭행하는 장면이다. 영재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자랑하는 세진의 배를 거듭 세차게 걷어차는 장면인데 허벅지 사이의 흥건한 피를 클로즈업 한 화면은 과잉처럼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영재와 화영사이에 이루어지는 폭력 상황에서 권력의 우위에 있는 자의 일종의 쾌락 그리고 두려워하면서도 폭력에 대한 감당을 자신의 존재의미로 삼으려는 화영 사이의 미묘한 심리 포착이 탁월했지만 그래도 한편 폭력 장면에 대한 일말의 관음증을 관객의 입장에서 스스로 우려해보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세진에 대한 화영의 폭행이 이루어지고 난 뒤의 영재의 반응이다.  세진에 대한 구박을 응징하여 거센 폭력을 행사하던 이전 장면과는 달리,  자신의 아이를 유산시켰음에 분명한 세진에 대한 화영의 폭행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이 화영이 은미정과 동행하였음에 가장 큰 분노를 드러낸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후 은미정을 구하려다 오히려 화영이 성매수남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는 장면에서 영재가 거의 이성을 잃은 듯 분노와 폭력을 드러내는 장면과 연결될 때이다. 영화 초반부터 자신의 여자였던 은미정이 화영의 불량한 가출팸 집단과 어울리기를 금지하였지만 후반부의 저 두 장면에 보이는 지나친 분노는 역설적이게도 영재가 보호하려는 대상이 은미정인지 혹은 은미정의 이기적 조종에 놀아나는 화영인 것인지 잠시 모호해진다. “모두가 너 때문”이라며 도피하고 결국은 영재와 은미정의 폭력의 죄마저 화영이 스스로 짊어지게 만들지만 어쩐지 영재의 저 말이 또 다른 의미에서의 진심은 아니었는지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영화 속 인물들 대부분이 사실은 자기 행동 뒤의 진심을 그 마음의 이유를 스스로 모르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정한 동기가 스스로에게 가장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보이는 것은 주인공 박화영이다. 거칠고 이기적인 아이들에게 그보다 더 거친 척을 하면서 집과 음식과 때로는 대신 받는 폭행을 위해 자신의 몸까지 내어주면서 엄마라 불리기에 집착하는 자해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 박화영, 자신의 이름을 잃고 엄마라는 이름에 집착하며 사실은 그들의 노예이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자신의 엄마에게는 엄청난 욕설과 폭력적인 시위로 돈을 받아내지만 엄마는 만남을 거부한다. 사실 영화 속에서 화영은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견디지 못하는 듯 보이는데 자신의 가족에게서 배제된 화영이 스스로 엄마 되기를 통해 기형적이나마 새로운 가족을 유지하려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영화 속에서 화영은 두 가지 헤어스타일로 등장한다. 커트 머리의 가출팸의 엄마로서의 화영과 어깨까지 기른 단발머리의 순한 표정의 화영이다. 영화 중간 중간 단발머리의 화영이 친엄마를 만나는 짧은 장면이 삽입 되는데 엄마는 돈 봉투만을 남기고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돌아선다. 화영의 과거 어느 지점, 거친 가출팸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 이유라고 자연스럽게 추측하게 된다. 그런데 단발머리의 화영은 거의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은미정을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화영의 헤어스타일과 함께 영화의 화면 비율도 두 가지로 촬영되었고 GV에서 감독은 커트머리의 과거와 단발머리의 현재 두 가지 시간대의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연출하였다고 하는데 시간대를 교차한 편집이 다소 혼란스럽고 모호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화영은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은미정의 이기적 동기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또 다시 새로운 가출 청소년을 엄마라고 부르라며 맞아들인다. 버려진 스스로의 이름 박화영,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욕망과 마음에 대한 확인은 아직도 그녀에게서 멀리 있다.    

2017.10.21
여설란

 ‘작가의 장벽(Writer’s Block)’이라는 게 있다. 머릿속에 장벽이 있는 것처럼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지만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다. 요즘에야 하얀 것은 모니터요, 껌뻑이는 것은 커서라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이광국 감독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2017)은 이제는 소설을 쓰지 않는(소설을 쓸 수 없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안 되는 것이 많은 불능(不能)의 경유(이진욱 분)가 신춘문예로 등단한 옛 여자친구 유정(고현정 분)을 만나게 된 이야기다. 여자친구 집에서 쫓겨나 마땅히 갈 곳도 없이 대리운전 일을 하는 경유와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나 다음 작품을 쓰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정은 처지는 다르지만 닮았다. ‘옛 연인의 재회’보다 ‘글을 쓰지 못한다’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글을 쓸 수 없는 경유가 글을 다시 쓰려고 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첫 장면. 침대에 누워있는 경유의 뒤통수가 보인다. 이어지는 여자친구 현지(류현경 분)의 목소리. “일어나! 일어나서 밥 먹어.” 부스스한 머리의 경유가 천천히 일어나 식탁으로 간다. 구도가 독특하다. 경유가 일어난 자리는 중앙에 있고 둘은 화면 왼쪽 구석에 있는 식탁에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다. 어딘지 불안정하고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뉴스에서 호랑이가 동물원을 탈출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하천에 상어가 출몰한다는 소식보다는 현실적이지만 멧돼지가 농가로 내려왔다는 소식보다는 비현실적이다. 경유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났는데 보는 사람은 꿈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재밌다. 꿈보다 해몽이다.    ‘호랑이 조심하라’는 여자친구의 말을 뒤로하고 집을 나온 경유는 대리운전 호출을 받고 나간 곳에서 유정을 만난다. 휘황찬란한 불빛과 사람들이 가득한 요란한 술집거리가 아니다. 인적도 없고 조용하다. 어둠 속 조명이 켜진 한옥 지붕 앞에서 둘은 마주 섰다. 호랑이를 조심하라고 했건만 마주하기 싫은 나의 모습, 나의 약한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을 만났다. 차에 앉아 어색한 대화를 나누는 둘을 카메라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잡는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대부분 고정되어 있다. 두 사람이 등장할 때 한 사람이 퇴장해도 카메라는 따라가지 않는다. 대화가 끝났는데도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을 계속 비추고 있다거나 남아 있는 사람이 퇴장한 이후에도 그대로 공간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공간을 비추고 있으면 사람이 들어오거나 인물이 화면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가버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고정된 카메라 안에서 모두가 자유롭게 입장과 퇴장을 반복하며 뛰노는 느낌이다. 이런 반복이 그리는 궤적이 어떤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떠나온 동물원’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탈출’이 아니라 ‘떠났다’고 말한다. 고정된 카메라의 네모난 프레임은 동물원의 ‘우리’를 연상하게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 ‘우리’를 스스로 드나들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 놓고 혹은 그어 놓고 그 틀 안에서만 움직인다. 작은 ‘우리’가 자신이 가진 세계의 전부인 양. 밖으로 한 발 내딛기만 하면 빠져나올 수 있는데 말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카메라는 경유를 가까이서 잡는다.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다가간다.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싫어도 이유를 말하지 않고 부당한 요구에도 넘어가거나 회피하는 경유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기를 회유하듯이. 마음의 가장 약한 부분을 형태로 빚으면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그런 호랑이를 가지고 있다. 세상은 조심하라고 하지만 언젠가는 호랑이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머릿속에 장벽을 걷어내고 펜을 들어야 한다. 경유에게는 ‘글’이지만 관객은 각자 대입할 수 있는 ‘무엇’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우리는 호랑이를 만날 수 있을까. 이것이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 꿈이자 우화이자 커다란 은유처럼 느껴진 이유이다.

2017.10.21
조효정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중에서, 후자를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다. 전자를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일탈로 낙인 찍힌다. 그런 의미에서 <소공녀>의 미소(이솜)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상당히 이상한 선택을 한다. 위스키와 담배를 위해 월셋방을 정리하는 것이 바로 그것. 예전 밴드 멤버 다섯을 찾아가며 미소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웃기고도 슬프다. 누구에게나 따뜻한 마음을 건네는 미소와는 대조되는 차가운 세상의 모습이 각각 다른 사정이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나타난다. 무얼 위해 사는가 하는 의문은 평생을 곱씹어 보아야 할 숙제와도 같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정규교육과정을 마치고, 취업을 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또 취업을 하고나서는 결혼이나 내집마련, 노후대책 등에 치여가며 돈을 모은다. 지금 이 순간의 스스로가 아닌 미래의 자신을 위해 현재를 버텨내는 셈이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할까. 미소는 행복하단다. 지금 이대로가 좋단다.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만 있으면 다 괜찮단다.  눈 앞의 작은 즐거움을 하찮게 여길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현재의 행복을 선택했다고 해서 손가락질 받을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서울 한복판에서 미소의 선택은, 처절하고 외롭다. 하지만 미소는 괜찮을거다. 누구에게나 따뜻한 기운을 전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내뿜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거다. 그리고 그런 미소의 삶에 위로 받고 또 응원하면서 나 또한 매일의 행복을 가장 아름다운 가치로 여기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소공녀>가 우리네 삶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는 세상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2017.10.21
오세연

정교한 플롯에 감탄을 하고, 화려한 영상미에 압도되거나, 멍하니 보고 있다가 극장 문을 나서면서 무릎을 탁 치거나 몇 시간 지나서야 잔상들이 머리를 어지럽히며 한 번 더 극장을 찾게 하는 영화가 있다. <얼굴들>은 표면적으로 네 명의 주인공을 내세우지만 솔직히 인물들을 정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초반부 그들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시도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접점에서 만나게 되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고 복선인 듯 냄새를 풍기던 미끼는 가볍게 무시했으며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적 운명 따위는 애시당초 없었다. 기선이 락커 열쇠를 묵직한 절단기로 자르자 안에는 또 묵직한 절단기가 기다리고 있다. 기선과 통화하는 진수는 아 그럼 나에게로 오든가. 그렇다 둘이 만나야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일은 그대로 흐지부지 넘어가도  훔쳐온 금고를 부수고 있는 진수가 다음 장면이다. 어렵게 부쉈으나 내용물은 서류와 봉투들.  가게 공사가 중단된 혜진이 위기를 어떻게 풀어내는 지는 없다 .  이 숱한 미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사건은  없다.  우리앞에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다음 사건으로 가는 복선이 되지는 않는다.  영화는 증명사진 같은 얼굴을 자꾸 보여준다. 복선이 되어야만 하는 일들을 앞에 둔 평범한 얼굴들.  기억은 그  증명사진 같은 얼굴을 새긴다. 리모델링 하던 가게 공사 불가를 알리는 목수를 보던 혜진의 얼굴, 진수대신 나는 어떠냐는 학생을 바라보는 기선의 얼굴. 기선을 대접하는 진수 아빠의 얼굴. 회사 임원인줄 알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바로 아니라는 얼굴. 생화보다 조화가 쓸모 있다는 말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택배 기사의 얼굴. 택배회사 조끼를 입고 있다고 해서 다 직원은 아니에요. 회사 임원이라는 건 어떻게 아시죠? 수많은 얼굴들 사이에서 우리를 구분하는 것은 무엇일까?  

2017.10.21
양경화

  “가족이 생겨서 왔어.. 나는..나는 행복해지면 안 되는 거냐?”         왜 돌아왔냐고 공격적으로 묻는 영석(임형국 분)의 질문에 눈물을 글썽이며 형석(허준석 분)이 답한다. 그러니까 형석이 기나긴 시간동안 사라졌다 다시 영도로 돌아온 이유는 가족과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형석에게 영도는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인 것일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형석은 영도에 와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형석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영화의 말미에 와서야 돌아온 이유를 말해줬으니 우리는 영화를 거꾸로 되짚어가며 형석이 어떤 행복을 기대하며 영도에 왔는지, 즉 영화에 출발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형석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한 언급이 없으므로 우리는 그의 행동들을 통해 추측해볼 수밖에 없다. 우선 형석은 부산에 돌아온 뒤 과거의 공간들을 찾아간다. 악기점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휴대폰가게에 가서 악기점에 대해 묻고, 만두를 포장해가곤 했던 중국집에 찾아가 똑같이 만두를 포장해서 사간다. 또한 형석은 이민자라는 정체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동남아 출신 친구인 하이를 무시하며 모욕하는 사람에게 대신해서 버럭 화를 내고, 하이가 소개해준 일자리에 취직하며 그들과 파티를 한다. 또한 부인과 아이가 베트남 출신인 것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무던히 노력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민자라는 정체성과 인간의 존엄을 동시에 유지하고, 과거의 공간들과 공존하는 것이 형석의 행복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과거의 사람들 그리고 과거의 사건들이다. 형석은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기 매우 꺼려한다. 친구도 피하고, 첫사랑도 피하며, 형제도 피한다. 하지만 형석이 영도에 돌아온 순간부터 회피는 불가능했다는 듯 형석은 과거의 시간과 다시 엮인다. 그리고 과거의 시간은 현재의 형석에게 다시 소환되고, 정지되었던 사건들이 다시 진행된다.  과거의 사람들과 과거의 시간에는 가부장제의 폭력이 있으며, 종교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뒤엉켜 있고, 비틀린 형제의 갈등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의 문제들은 형석이 다시 영도에 나타난 순간부터 다시 현재로 대물림된다. 형석을 발견한 영석의 아들은 다시 가부장제의 희생을 받고, 종교는 동남아 이민자들에 대한 폭력을 행사한다. 학교는 이민자를 타자화하며, 경찰서에 간 형석은 끝내 살인자라는 과거가 까발려진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영화에서 중심 의제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과거와 현재가 긴밀하고 은밀하게 연결된 이 일련의 사건들을 형석이 꼭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앞의 여러 가지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 딱히 이렇다 할 판단이나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것을 대면한 형석의 반응이다. 형석은 어떻게 과거를 외면하려하고, 외면의 실패로 인해 괴로워하는가? 혹은 형석은 어떻게 과거의 관계를 붙잡으려 하고 이내 그 앞에서 무릎 꿇고 마는가? 결국 영화는 현재의 형석과 과거의 형석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오해와 기억, 혼란, 트라우마를 그려낸다. 형석이 돌아온 그 순간부터, 혹은 살인이 일어난 15년 전 그 순간부터 형석은 이 트라우마를 대면하지 않고선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여기서 서두에 언급한 ‘행복’의 형상이 어렴풋하게나마 그려진다. 형석은 과거를 마주하지 않고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과거의 공간, 관계, 사람, 사건들은 언제나 형석을 부여잡고 있으며, 옥죄어 온다. 그렇기에 교실과 교회에서, 영석과 연욱을 통해 과거를 마주하는 형석은 혼란스럽고 괴로우며, 외로운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과거와 지금의 사이, 혹은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 혹은 삶과 죽음의 사이, 혹은 가족과 다른 가족의 사이에 존재하는 좁혀질 수 없고 인지될 수 없는 공허한 틈을 이미지화한다. 여기에는 어떤 트라우마를 마주해야하는 두려움이 있으며, 부재하는 시간을 붙잡아야하는 공허함이 있고, 끝내는 알 수 없는 타자에 대한 무지가 있다. 대부분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행복을 찾으러 왔다는 형석 또한 이러한 것들 앞에서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을 경유하지 않고 행복에 가닿을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까. 결국 이 모든 것은 행복의 부재를 통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2017.10.21
구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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